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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된 '불멸의 상징' 떴다...불가리 CEO가 삼청동에 간 이유 [더 하이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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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이 뜨겁다.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불가리’가 지난달 23일부터 국제갤러리에서 시작한 전시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 그 끝없는 이야기’ 때문이다. 6월 23일 전시 개관 날부터 관람객이 몰려들더니, 5일 뒤인 28일엔 불가리 최고경영자(CEO) 장-크리스토프 바뱅과 브랜드 앰배서더 리사까지 이곳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불가리의 대표적인 상징물이자 컬렉션인 '세르펜티'의 출시 75주년을 맞아 마련한 행사다.

불가리가 세르펜티 75주년을 기념해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사진 불가리]

불가리가 세르펜티 75주년을 기념해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사진 불가리]

세르펜티(Serpenti)는 ‘뱀’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유럽에서 뱀은 재생·변화·부활·불멸·지혜 등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오피오스가 언제나 뱀이 감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 게 대표적이다. 뱀이 신비의 약초를 물어와 죽어있는 다른 뱀을 살리는 광경을 보고, 지팡이에 뱀을 감아 다닌 것이 기원이 됐다. 이후부터 뱀은 의술이나 의사의 상징물로 쓰인다. 앰뷸런스나 의사협회 로고에 뱀 모양의 로고가 새겨진 이유다. 불가리 측은 이번 행사를 통해 국내에 뱀의 이미지를 새롭게 재정의하고자 했다.

할리우드 여배우도 반한 '불멸' 상징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불가리 세르펜티 팔찌를 차고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습. [사진 불가리]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불가리 세르펜티 팔찌를 차고 있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모습. [사진 불가리]

불가리는 뱀이 가진 에너지와 생명력에 집중해 1948년 첫 세르펜티 주얼리를 세상에 선보였고, 이후 브랜드를 상징하는 대표 주얼리가 됐다. 세르펜티는 특히 대담하고 강렬한 여성상을 표현하고 싶었던 미국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 사랑받았다. 영화 ‘클레오파트라’(1962년)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손목에 착용했던 에메랄드 눈을 가진 뱀 모양의 팔찌가 바로 세르펜티였다. ‘노트르담의 꼽추’(1956년)의 주인공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파티에서 세르펜티 시계를 즐겨 착용했다. 또 뉴욕 패션 업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패션잡지 보그 편집장 출신의 다이애나 브랠랜드는 유독 이 주얼리를 좋아해, 금으로 만든 불가리의 스네이크 벨트를 목에 두 겹으로 둘러 목걸이처럼 걸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곤 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영화에서 찬 팔찌. 그의 주문에 불가리가 특별 제작했다. [사진 불가리]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영화에서 찬 팔찌. 그의 주문에 불가리가 특별 제작했다. [사진 불가리]

국제갤러리의 첫 브랜드 대관 협업
이번 전시는 세르펜티의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내며 세계 각 나라의 작가들과 함께 선보이는 릴레이 전시회 중 하나다. 지난 2월 스페인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을 시작으로 런던·뉴욕·상하이를 거쳐 이달 한국에 왔다. 국내에선 국제갤러리와 협업해 뱀의 이야기가 담긴 한국 작가의 작품들을 보여준다.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 그 끝없는 여정' 전을 열고 있는 국제갤러리. [사진 불가리]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 그 끝없는 여정' 전을 열고 있는 국제갤러리. [사진 불가리]

이번 불가리의 전시는 자신들의 제품을 앞에 내세우고, 예술 작품은 곁다리로 붙이는 여느 브랜드 행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국제갤러리와의 협업을 통해 선정한 작가와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들의 세르펜티 제품은 맨 마지막 관에서 경험하게 한다. 뱀의 예술적 이야기를 먼저 경험한 뒤, 자신들의 제품을 보길 원했다. 뱀과 연관된 서사를 상업성 없이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브랜드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문일까. 국제갤러리는 전시 협업뿐 아니라 전관을 이번 행사에 흔쾌히 내줬다. 국제갤러리가 사기업에 전관을 내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갤러리 측은 "두 브랜드는 오랫동안 날카로운 지성미나 견고한 여성성을 추구해왔다"면서 "이런 공통점을 가진 두 브랜드의 결합이 상당히 흥미롭고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 전시를 수락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제갤러리는 세르펜티의 착용자상으로 삼고 있는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천경자, 최욱경, 함경아, 홍승혜, 최재은 등 걸출한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이중 홍승혜, 최재은 작가는 세르펜티를 모티프로 한 협업 작품을 제작해 공개했다. 여기에 더해 20세기 누보 레알리즘을 대표하는 프랑스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의 ‘아담과 이브’ ‘나나 상테’ 등 작품 11점은 불가리가 미국 니키 자선예술재단(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NCAF)을 통해 들여왔다.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에 함께한 작가들.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니키 드 생팔, 최욱경, 최재은, 홍승혜. [사진 불가리]

불가리 세르펜티 75주년에 함께한 작가들.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니키 드 생팔, 최욱경, 최재은, 홍승혜. [사진 불가리]

대담함·진취성 등 뱀의 상징성 보여줘
또한 1950~60년대에 만들어진 시계와 주얼리, 그리고 수억 원이 훌쩍 넘는 하이 주얼리 등 세르펜티 제품 수십 점이 함께 전시된다. 루비·다이아몬드로 뱀 머리를 장식한 ‘세르펜티 투보가스 시계’, 초록빛 에메랄드로 온몸을 장식한 팔찌 ‘세르펜티 레인 포레스트 하이 주얼리 브레이슬릿’, 34캐럿이 넘는 카보숑 루벨라이트 보석을 입에 문 뱀 모양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세르펜티 이클립스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 등이 이번 전시에서 챙겨 봐야 할 대표 제품들이다.

이번 전시에 온 34캐럿이 넘는 카보숑 루벨라이트를 입에 문 세르펜티 목걸이. 장진영 기자

이번 전시에 온 34캐럿이 넘는 카보숑 루벨라이트를 입에 문 세르펜티 목걸이. 장진영 기자

전시는 이달 31일까지 네이버 예약을 통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데, 7월 중순까지 금~일요일은 대부분의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전시 기간 중 갤러리 현장에서 직접 찾아가 기다리면, 예약 없이도 입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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