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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30배 비싼 항공편 썼다…한국, 대륙철도서 밀려났던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숫자로 보는 대륙철도 운송]

현대글로비스가 TSR을 이용해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사진 현대글로비스

현대글로비스가 TSR을 이용해 화물을 운송하고 있다. 사진 현대글로비스

 '300억원.'

 우리나라 물류업체들이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 Railway)와 중국횡단철도(TCR,Trans China Railway) 등 대륙철도를 이용하면서 운송 지연 탓에 입는 한해 손실액 규모입니다.

 얼핏 북한에 가로막혀 철도가 러시아나 중국으로 바로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륙철도를 이용하는 화물이 얼마나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텐데요.

 하지만 부산에서 배편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나 중국 내 주요 항구까지 실어나른 뒤 TSR, TCR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동부 유럽으로 운송되는 화물이 적지 않습니다.

 폴란드에는 삼성전자·LG전자·LG 화학·포스코가 진출해 있고, 체코에는 현대차와 넥센타이어·GS 칼텍스 등이 현지 생산공장을 운영 중입니다. 또 우즈베키스탄에는 성우·오스템 등 우리나라의 중고 자동차 관련 업체들이 있습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자료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주요 5개 물류업체가 대륙철도를 이용한 물동량은 지난해 10만 2160TEU에 달합니다. 1TEU는 20ft(609.6㎝) 크기의 표준 컨테이너를 의미하는데요. 2020년 7만 6820TEU, 2021년 9만 6794TEU에 이어 계속 증가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동량이 늘다 보니 화물 지연으로 손실을 보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토부가 조사해보니 A 기업은 TCR 이용 과정에서 중국 측의 자국 물량 우선 수송, 열차 혼잡도와 국경 상황 등으로 인해 컨테이너 100개가 3개월이나 운송이 늦어져 1200만원가량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만 했습니다.

 또 B 업체는 중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국경을 넘어갈 때 발생하는 열차 환적 과정에서 화차 등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화물을 다른 열차로 옮겨싣는 데에만 2주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환적이 통상 하루 이틀이면 끝나는 걸 고려하면 너무 늦어진 건데요.

대륙철도 이용 물동량

대륙철도 이용 물동량

 이렇게 되면 업체들은 중앙아시아나 동부 유럽에 있는 국내 기업의 현지공장에 제때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 요금이 무척 비싼 항공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럽까지 1TEU를 운송할 때 일반적으로 철도는 운임이 5000달러(약 650만원)이지만 항공편은 15만달러(약 2억원)로 30배나 된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손실이 쌓이는 겁니다.

 운송이 지연되는 건 해당 국가의 화차 부족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나라가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의 국제철도운송협정에 가입이 안 된 탓이 크다는 분석입니다.

 참고로 OSJD는 1956년 옛 소련과 중국, 몽골, 폴란드 등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륙철도를 통한 여객과 화물 운송 활성화를 위해 창설한 국제기구입니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 회원국으로 가입했는데요. 현재 정회원은 30개국이며 본부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습니다.

자료 국토교통부

자료 국토교통부

 문제는 우리나라가 OSJD 회원국이긴 하지만 국제철도운송협정에 가입이 되지 않아 국가별 쿼터 등 대륙철도 화물 운송량 계획을 협의하는 물동량 회의에 참석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 회의에는 협정 가입국만 참여가 가능한데요.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자국 물량을 우선 수송한다고 해도 우리는 내세울 권리(쿼터)가 없어 꼼짝없이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지난달 13일부터 16일까지 나흘간 부산에서 개최된 '제50차 OSJD 장관회의'에서 국제철도운송협정 가입에 성공한 겁니다. 협정에 가입하려면 우선 회원국의 3분 2가 참석해 장관회의가 성립돼야 하고, 참가국 전원이 동의해야만 합니다.

TSR 운송이 시작되는 러시아 보스토치니항 모습. 연합뉴스

TSR 운송이 시작되는 러시아 보스토치니항 모습. 연합뉴스

 앞서 2019년에도 협정 가입을 추진했지만, 북한이 반대해서 성사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번에 가입이 승인됐다고 해서 바로 효력이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국제철도운송협정은 조약에 준하는 것이라서 국회 비준 등 국내의 후속 절차를 완료하고, 이를 OSJD 위원회에 보고하면 한 달 후부터 실질적으로 협정이 발효된다는 설명입니다.

 오원만 국토부 철도정책과장은 “협정이 발효되면 물동량 협의를 통해 우리나라의 화물 쿼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업계 보호와 더불어 중앙아시아 및 동부 유럽에 진출한 우리 현지 생산공장에도 부품과 원자재 공급이 원활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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