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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바둑은 스포츠인가?” 챗GPT에 물었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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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박치문 칼럼

박치문 칼럼

챗GPT에게 물어본다.

바둑·체스·브릿지는 스포츠인가.
“스포츠라는 특정 활동은 주관적일 수 있고 관점과 정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바둑·체스·브릿지는 흔히 마인드 스포츠(mind sports)로 간주된다. 정신적 기량, 전략적 사고와 관련이 깊다. 신체적 단련, 경쟁을 요구하는 전통적 관점에서는 스포츠로 분류되지 않는다.”

상식적인 답변이 나왔다. 오랜 논쟁이고 아직도 진행 중인 논쟁이라서 챗GPT 역시 조심스러운 눈치다. 하나 더 물어본다.

바둑·체스·브릿지의 올림픽 진입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브릿지와 체스를 스포츠로 인정했다. 게임과 스포츠의 차이가 주관적일 수 있는데 브릿지가 흔히 스포츠로 간주되는 반면 바둑과 체스는 마인드 스포츠로 간주되고 있다.”

올림픽에 진입하면 그 종목은 소위 대박이 터진다. 카드 게임인 브릿지가 IOC 로비에 공을 들여온 이유다. 그리하여 브릿지는 1991년, 체스는 1999년 IOC로부터 스포츠 인정을 받았다. 바둑은 일본이 강했던 시절 올림픽 진입 운동을 펼쳤으나 정작 일본 자체에서 바둑이 스포츠로 지정되지 않는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그 후 국제바둑연맹(IGF)이 나름 노력을 기울였으나 진전이 더딘 상태다. 각 연맹의 참가국 수는 체스 197개국, 브릿지 123개국, 바둑 77개국이다. 챗GPT에게 혹시나 해서 동호인의 수를 물어봤지만 역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바둑은 대략 1억명쯤일까.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전략 게임이자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지만 동호인 대부분이 중국·일본·한국이다. IGF 참가국은 유럽(39개국)이 가장 많고 아시아 18개국, 미주 15개국 순이다. 아시아가 적은 것은 아랍권이 바둑의 불모지인 탓이 크다.

이런 바탕을 가지고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마인드 스포츠 부분을 살펴본다. 종목은 5개, 메달 수는 20개다. 브릿지(3), 체스(4), E 스포츠(7) 바둑(3), 중국 장기(3). 괄호 안이 메달 수인데 E 스포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E 스포츠는 없었다. 데뷔하자마자 최대 메달을 확보한 것은 E 스포츠의 든든한 배경 탓이다. 게임산업이 뒤를 받치고 있고 가상현실이라는 미래산업과도 손이 닿는다.

바둑은 조화(調和)가 중요한 가치다. 폭력성이 없는 최고의 전략 게임이다. 그러나 산업이랄 게 없다. 나무와 돌이 그냥 담백하다. 돌아보면 오늘날의 사회상은 격투기를 연상케 한다. 인기 있는 전자게임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미래에는 바둑이 지향하는 ‘조화’가 사회의 최고 가치가 될 수도 있으리라. 그렇게 희망해본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바둑팀은 남녀 단체전, 혼성 페어 3종목을 모두 휩쓸었다. 머리에 침을 꽂은 이슬아 선수가 스타가 되기도 했다. 한데 정작 한국이 주도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바둑 종목이 탈락했다. 바둑은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단체다. 한국이 제일의 바둑 강국임을 고려할 때 바둑은 당연히 포함될 것으로 믿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등이 생애 처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기도 했지만 당시 조직위원회의 스포츠에 대한 가치관은 완강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국대표는 남자 신진서·박정환·변상일·신민준·김명훈·이지현, 여자 최정·오유진·김채영·김은지.

중국은 최근 선발전을 다시 치러 커제·양딩신·리친청·미위팅·자오천위·양카이원을 뽑았다. 일본도 이치리키 료·이야마 유타·시바노 도라마루 등 최강의 진용을 갖췄다. 이번엔 남녀단체와 남자개인전이 열린다. 혼성 페어가 사라진 것은 신진서-최정 커플을 막을 자가 없어서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아시안게임과 함께 다시금 마인드 스포츠의 시즌이 열린다. 중국은 이미 훈련에 돌입했다는 소식이다. 스포츠는 시대의 총아이고 힘이 있다. 바둑도 생존을 위해 스포츠라는 아궁이에 다시 불을 지핀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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