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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우대 없애라"...이번엔 美하버드대 '레거시 입학' 겨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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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연방 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ㆍ대입 소수인종 우대 정책) 위헌 판결에 항의하며 가두 행진을 벌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연방 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ㆍ대입 소수인종 우대 정책) 위헌 판결에 항의하며 가두 행진을 벌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대입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정책에 대한 연방 대법원의 위헌 판결 이후 미국 사회에서 ‘대입 공정’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제도 폐지로 대입 문턱이 높아진 흑인ㆍ히스패닉 등 소수인종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학 동문 자녀의 입학 우대 정책인 이른바 ‘레거시(Legacy) 입학’ 제도의 폐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레거시 입학 제도는 대학 동문 부모가 모교에 꾸준히 기부를 할 경우 자녀에게 입학 특전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시민권을 위한 변호사’(Lawyers for Civil RightsㆍLCR)는 3일(현지시간) “하버드대가 부유층 기부자 및 동문과 가족관계에 있는 지원자에게 입학 특혜를 주는 건 차별적 관행”이라며 교육부 민원 담당국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LCR은 흑인 단체와 라틴계 모임 3곳을 대신해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LCR은 “하버드대 기부 및 동문 관련 지원자의 약 70%가 백인이며 이들은 신분에 따라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다”고 했다. LCR에 따르면, 기부 관련 지원자는 기부와 무관한 지원자보다 입학 가능성이 7배 정도 높고, 가족이나 친척이 해당 대학을 졸업한 레거시 지원자는 6배가량 더 높다. 2019학년도 학생의 경우 약 28%가 부모 또는 친척이 하버드대에 다닌 것으로 파악됐다.

“성(姓)과 은행계좌 크기로 평가해선 안돼”  

미국 연방 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ㆍ대입 소수인종 우대 정책) 위헌 판결이 나온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이 교문을 통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연방 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ㆍ대입 소수인종 우대 정책) 위헌 판결이 나온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이 교문을 통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듀크대 경제학자 피터 아르시디아코노의 하버드대 입학생 분석 결과도 비슷했다. 동문 관련 백인 지원자의 하버드대 입학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백인 지원자보다 5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버드대 레거시 및 기부 관련 특혜를 받는 압도적인 백인 지원자들에게 입학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자격을 갖춘 유색 인종 지원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이런 관습과 관행은 배타적이고 차별적”이라는 게 LCR 측 주장이다. 이반 에스피노자-마드리갈 LCR 사무국장은 “가족의 성(姓)과 은행 계좌의 크기가 (지원자) 자질을 평가하는 잣대는 아니다”며 “대입 절차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버드대 니콜 루라 대변인은 LCR의 문제 제기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 대신 “연방 대법원의 최근 판결에 따라 우리의 핵심 가치를 지켜내는 방법을 결정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만 재확인했다.

그럼에도 최근 정치권 전반에서 (각 대학의) 레거시 지원자 및 기부 관련 지원자 특혜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판결 직후 성명을 통해 “기회가 아니라 특권을 확대하는 레거시 입학 및 기타 제반 시스템을 검토할 것을 교육부에 요청하겠다”고 했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대국민 연설을 통해 연방 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ㆍ대입 소수인종 우대 정책) 위헌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대국민 연설을 통해 연방 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ㆍ대입 소수인종 우대 정책) 위헌 판결을 비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민주ㆍ공화 양당에서도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결정을 계기로 레거시 지원자 혜택을 없애는 방식으로 대입 공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대법원이 그들의 터무니 없는 ‘인종 무지’(Colorblindness)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면 특권층 우대 조치로 알려진 레거시 입학을 폐지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화당 내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이자 대선 주자 중 하나인 팀 스콧은 폭스뉴스 한 프로그램에 나와 “하버드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대학 동문 자녀에게 특혜를 주는 레거시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대법관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 연방 대법원, AFP]

미국 연방대법관 현황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 연방 대법원, AFP]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판결 때 다수 의견(위헌) 쪽에 선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도 당일 판결에서 레거시 입학 제도 폐지론에 동조했었다. 그는 기부자 및 동문 자녀에 대한 특혜를 겨냥해 “부모의 행운이나 동문 모임을 자랑할 수 없는 지원자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며 “겉으로는 인종 중립적인 듯하지만 이런 특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백인과 부유층 지원자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준다”고 했다.

최근 수년 새 레거시 입학 제도를 폐지하는 명문 사립대학도 하나둘 늘고 있다. 존스홉킨스대는 2020년 이 제도 폐지를 발표했고 MIT와 칼텍, 앰허스트도 더는 운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경쟁률이 치열한 상당수 명문 사립대의 레거시 입학제 폐지 움직임은 여전히 더디다. 지난해 뉴욕주에서는 레거시 입학제 폐지 법안이 제출됐지만, 컬럼비아ㆍ코넬ㆍ콜게이트 등 명문 대학이 포함된 뉴욕주 사립대학협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또 지난해 코네티컷주에서는 이 제도와 관련해 청문회가 열렸는데 예일대가 “대학 업무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라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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