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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주머니 털어 빚 갚는다"…CJ·SK 1조 유상증자 후폭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CJ·SK이노베이션 등 대기업의 잇따른 유상증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주주 주머니 털어 빚 갚는다’는 것이다. 회사채 발행이나 은행 대출 등 이자를 부담하는 방식 대신 주식 시장에서 기존 주주 지분을 희석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한다는 비판이다. 시장의 냉담한 반응에 주가도 연일 급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1조원대 유상증자에 주가 하락

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CJ CGV는 전 거래일보다 1.08% 오른 9400원에 마감했다. 지난달 20일 1만4500원이었던 주가는 1조원대 유상증자를 발표하자 급락해 10거래일 만에 30% 급락했다. 지난달 23일 1만원 아래로 내려간 주가는 9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달 23일 1조원대 유상증자를 발표한 SK이노베이션의 주가도 내리막을 탔다. 지난달 23일 18만2800원이었던 SK이노베이션 주가는 3일 16만3500원까지 내려왔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유상증자는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 자본을 늘리는 것이다. 통상 시가 보다 낮게 발행되는 데다, 신주 발행으로 주식 수가 늘어나 기존주주의 지분이 희석되는 만큼 주가에는 ‘악재’로 여겨진다.

유상증자가 주가에는 악재이긴 하지만, 최근 유독 시장의 반응이 냉담한 것은 유상증자의 '목적' 탓이다. 투자나 신사업 추진보다는 ‘빚 갚기’를 위한 증자란 시선 때문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3일 1조1777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추진한다고 밝혔는데, 이 중 3500억원(30%)을 채무 상환에 쓰겠다고 밝혔다.

CJ CGV도 지난달 20일 총 1조2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5700억원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이며, 4500억원은 모회사인 CJ를 상대로 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다. 일반 공모한 자금 5700억원 중 67%에 해당하는 3800억원은 단순 채무 상환용이다.

이자 비용 안내고 자금 조달 “개미 호주머니 턴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여럿이다. 은행 등 금융회사 등에서 빌리거나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모두 이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유상증자는 주식시장을 통해 이자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대신 부담은 기존 주주가 지게 된다. 지분 희석에 따른 주가 하락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대출 금리도 오르고 채권 발행도 어려운 상황에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기업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투자자는 온라인 종목토론방에 “결국 개미 호주머니 털어 빚을 갚겠다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달 유상증자는 급증한 모습이다. 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월 유가증권시장에서는 10건의 유상증자 공시(정정공시 제외)가 나왔다.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은 총 2조2083억원으로 전년 동월(3343억원)보다 7배가량, 전달(1513억원) 대비 10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유상증자 목적을 살펴보면 채무상환자금 목적(8040억원)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 신사업 투자보다는 빚을 갚기 위해 유상증자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대표는 CJ CGV 유상증자에 대해 “부채 상환 등을 위한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것은 부실 경영의 책임을 회피하고 그 책임을 결국 주주에게 전가하며 기업과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CJ CGV가 현물출자 방식으로 유상증자에 나서며 투자자의 비판이 더 커지고 있다. CJ CGV의 모회사인 CJ는 이번 유상증자에 600억원만 출자하고, 대신 자회사 CJ올리브네트웍스를 현물출자해 현금 유출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택했다.

한국거버넌스포럼 측은 “현물출자는 실질적인 현금 유입이 없어 부채 상환 등의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게다가 CJ올리브네트웍스의 주식 가치를 4500억원으로 지나치게 높게 계산했는데, CJ CGV의 주가를 헐값으로 만들어 놓고 네트웍스의 가치는 부풀리는 방법으로 본인들의 지배력은 유지하고 소액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의 유상증자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장경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임대나 기존 건물을 활용하는 등 다른 방안도 가능했음에도 유상증자로 타인 자본을 상환하고, 장기 투자의 경우 단시일 내 수익 창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자체 이익에 기반한 재원이 아닌 (유상증자와 같은) 주주지분 희석을 통해 결정한 것은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주주 소송, 주주권 인식 강화된 만큼 소통해야  

시장에서는 유상증자를 통한 ‘소액주주 주머니 털어 빚 갚기’는 한국에서만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혜섭 변호사는 “미국이었다면 기존 주주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훼손하는 유상증자를 결정한 이사회를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이 진행됐을 것”이라며 “상법상 회사에 손해가 있을 때만 소송을 할 수 있는 한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소액주주 활동이 강화되며 기업이 유상증자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방문옥 머로우소달리 상무는 “최근에 소액주주가 권리 찾기에 적극적인 만큼 유상증자를 결정할 때 목적이나 방식에 있어 최대한 소통하고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유상증자로 인해 투자자의 신뢰를 잃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다른 액션(주주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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