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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10주년 맞은 뮤지엄산... 연간 20만명 이상 찾는 예술·관광 명소 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9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미술관 ‘뮤지엄산’의 제임스터렐관에 들어가자 푸르스름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방이 보였다. 한쪽 벽면에는 거대한 흰색 스크린이 걸려 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평면의 액정이 아닌 사각형 모양으로 뻥 뚫린 3차원의 공간이다. 그 곳으로 들어가니 뿌연 안개로 가득 찬 새로운 방이 나왔다. 빛과 안개가 뒤섞여 어디가 천장이고 어디가 벽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무한히 넓은 환상 속 공간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뮤지엄 산 제임스터렐관 '호라이즌룸' 사진 뮤지엄산

뮤지엄 산 제임스터렐관 '호라이즌룸' 사진 뮤지엄산

제임스터렐관은 오감의 체험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공간이었다. 실제로는 사방이 벽이지만 빛과 안개가 만들어내는 착시 현상으로 무한하게 넓은 공간처럼 느껴지는 ‘호라이즌룸’,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는 ‘간츠펠트’ 등 빛을 활용한 공간 예술은 미국의 설치 미술가 제임스 터렐(80)의 작품이다.

원주 뮤지엄산에 설치된 아치웨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원주 뮤지엄산에 설치된 아치웨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개관 10주년을 맞은 뮤지엄산은 '전원형 미술관'답게 광활한 부지와 다채로운 야외 정원을 자랑했다. 입구에서부터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제임스터렐관까지의 거리는 약 2.5km. 건물 사이 사이에는 정원과 대형 조형물이 어우러진 산책로가 있다. 워터가든 입구에 놓여진 빨간색의 조형물 ‘아치웨이’는 12개의 육중한 파이프가 이어진 모양이다. 워터가든에 둘러싸여 수면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본관, 본관을 감싸는 아치웨이, 신라 고분의 부드러운 곡선을 본 딴 ‘스톤가든’을 지났다.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의 앞 글자를 따서 ‘산(san)’이라 이름 붙였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뮤지엄산의 카페 테라스. 사계절의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뮤지엄산

뮤지엄산의 카페 테라스. 사계절의 자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뮤지엄산

지금은 해마다 20만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됐지만 뮤지엄산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서울에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산골(뮤지엄)에 누가 미술을 보러 오겠냐”며 설계 의뢰에 시큰둥했던 일본 유명건축가 안도 다다오(82)의 마음을 돌린 것은 고(故) 이인희(1929~2019) 한솔그룹 고문의 뚝심이었다. 그가 주저하는 안도에게 “아시아에, 아니 세계에 없는 미술관을 만들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오지 않겠느냐”고 받아친 일화는 유명하다.
특색과 매력을 갖춘 미술관으로 성장한 뮤지엄산은 관광 명소로도 유명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함께 선정하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우수 관광지 100선’에 2018년부터 5회 연속 선정됐다.

'안도 다다오-청춘' 전시관의 내부. 사진 뮤지엄산

'안도 다다오-청춘' 전시관의 내부. 사진 뮤지엄산

뮤지엄산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2019년에는 돔 형태의 천장 틈에서 빛이 들어오는 독특한 분위기의 명상관을 지었다. 올해는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인 ‘빛의 교회’를 축소한 형태의 파빌리온을 설치했다. 파빌리온은 16일부터 방문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뮤지엄산 명상관. 돔 형태의 천장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도록 설계됐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사진 뮤지엄산

뮤지엄산 명상관. 돔 형태의 천장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도록 설계됐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사진 뮤지엄산

전시도 순항 중이다. 4월 1일부터 뮤지엄산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안도 다다오-청춘’ 전시는 개막 두 달 여 만에 누적 관객 10만명을 돌파했다. 도쿄·파리·밀라노 등에 이은 안도의 일곱 번째 국제 순회전이다. 그가 자신이 직접 설계한 건물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뮤지엄산 측은 “단순히 건축가 한 명의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 미술사와 미학으로 넘어오는 과정이 드러나도록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1969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노출 콘크리트 설계 방식을 적용한 안도의 전반기 작품부터 30년에 걸친 나오시마 프로젝트,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세계 공공 건축물, 프랑스 파리의 옛 곡물 거래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프로젝트인 ‘브르스 드 코메로스’까지 안도의 대표작 250점을 사진과 스케치, 모형,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뮤지엄산에 설치된 풋사과 모양의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풋사과는 영원한 젊음을 상징한다. 사진 뮤지엄산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뮤지엄산에 설치된 풋사과 모양의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풋사과는 영원한 젊음을 상징한다. 사진 뮤지엄산

전시에 소개된 안도의 소설 같은 인생사도 눈길을 끈다.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는 대학을 나오지 않고 독학으로 건축을 배운 천재 예술가다. 일본 이바라키시의 교외 주택가에 있는 ‘빛의 교회’와 일본 나오시마 ‘예술 섬’ 프로젝트, 지추미술관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국내에도 제주의 본태미술관과 서울 강서구 엘지아트센터 등 그가 설계한 건물들이 여럿 있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 '간츠펠트'에 들어서면 시시각각 변하는 스크린의 색을 마주하며 환상 속 공간에 들어온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 뮤지엄산

제임스 터렐의 작품 '간츠펠트'에 들어서면 시시각각 변하는 스크린의 색을 마주하며 환상 속 공간에 들어온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 뮤지엄산

뮤지엄 산에서는 제임스터렐관과 '안도 다다오-청춘' 전시 외에도 종이 박물관, 파피루스 온실, 백남준 홀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명상관에서는 40분간 진행되는 명상 체험을, 공방에서는 판화를 찍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본관과 제임스 터렐관을 둘러보고 명상관에서 진행하는 명상 체험까지 참여하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 ‘안도 다다오-청춘’ 전시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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