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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덕후' 거실엔 백남준, 부엌엔 워홀…남산 '특별한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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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택 거실에서 백남준 작품 ‘이메일’(왼쪽)과 ‘광합성’ 앞에 선 서정기 패션디자이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자택 거실에서 백남준 작품 ‘이메일’(왼쪽)과 ‘광합성’ 앞에 선 서정기 패션디자이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세상에 백남준의 거대한 설치작품을 자택 거실에 들여놓고 매일 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백남준의 ‘자화상’과 ‘뮤직박스’를 함께 보며 식사할 수 있는 다이닝룸은 또 어떤가. 국내에서 ‘백남준 컬렉터’로 소문난 패션 디자이너 서정기씨의 집이 바로 그런 곳이다. 이미 적잖은 국내외 미술 애호가들이 알음알음으로 그 집에 다녀갔다. 그의 집은 컬렉터 사이에선 소문난 ‘필수 답사 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엌 벽은 앤디 워홀 판화 10점으로 채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부엌 벽은 앤디 워홀 판화 10점으로 채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의 집을 방문해 본 사람들은 일단 방대한 컬렉션 범주에 놀란다. 우리 전통 도자기 석간주, 앤디 워홀 판화, 중국 고가구,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만든 유리 의자 (‘고스트 체어’)가 한데 있는데도 놀랍도록 깔끔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곳에선 가구와 작품, 소품을 구분하거나 동서양, 전통과 현대,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나누는 일이 모두 부질없어 보인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들을 보듬고 가꿔 온 주인장이 창조한 ‘하나의 세계’만 있을 뿐이다.

7년 전 남산 자락에 새로 지은 집은 주인장의 컬렉션을 쏙 빼닮았다. 골동품과 현대미술을 아우른 컬렉션처럼 한옥과 양옥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 집에 사는 부부가 고무신을 신고 두 채를 오가듯이 이들의 컬렉션은 서로 다른 세계를 품으며 더 풍요로워졌다. 오래된 것과 혁신적인 것을 모두 품는 취향과 안목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그 사람이 더욱 궁금해졌다.

“중학교 시절부터 제가 이것저것 모아오면서 친구들한테 ‘너는 할머니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제게 ‘뭘 모으려면 한 종류만 제대로 모으라’고 충고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거 보세요. 저는 완전히 제 식대로 모았어요(웃음).”

한옥이 보이는 창 옆에는 서세옥의 수묵 추상화가 걸려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옥이 보이는 창 옆에는 서세옥의 수묵 추상화가 걸려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집에서 손님이 가장 먼저 들어서게 되는 곳은 양옥의 1층 거실이다. 거실문을 통과하자마자 거대한 백남준의 작품 두 점 ‘이메일’과 ‘광합성’이 나란히 손님을 맞는다. 가정집 거실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없는 크기, 그것도 한 점이 아니라 두 점이라는 사실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

처음 산 백남준의 작품은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 포스터를 판화(1989)로 찍은 것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가 64세트를 찍고, 34세트만 외부에 유통됐는데 그중 하나를 서씨가 산 것이다. 그는 이후 96년 말 비디오 설치작품 ‘자화상’을 샀고, 98년 ‘이메일’과 ‘광합성’ 두 작품을 한꺼번에 샀다. 그때 산 두 작품이 현재 거실 입구에 놓인 것들로, 그와 함께한 세월이 벌써 25년이다. 그는 ‘피시탱크’ ‘TV첼로’ ‘뮤직박스’ 등 백남준 작품 1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가 ‘백남준 덕후’가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 서씨의 얘기다.

“내 눈엔 백남준 작품이 굉장히 예쁘고 아름답다. 어느 공간에 놓아도 그 자체로 그곳을 빛나게 한다. 무엇보다도 작품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걸 생각했지?’ ‘이 사람 정말 천재잖아!’ 하고 감탄하게 된다. 미래를 내다본 능력도 대단하고, 표현 기법도 기발하다. 그런 작품 자체가 창작활동을 하는 내겐 큰 자극이 됐다. 사실 어떤 공간에 있을 때 매우 아름답고, 보는 사람들이 함께 탄성을 지르고, 시간에 빛바래지 않는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가가 세상에 그렇게 많진 않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은 정말 천재고, 또 굉장히 매력적인 작가다.”

서씨의 아내 신미현(인비트윈코리아 대표)씨는 “이 집 컬렉션에서 서정기씨가 보인다”고 말한다. 디테일에 집착하고, 색에 민감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반응하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 서정기가 그대로 보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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