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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234채 불타고, 차로 시장 집 돌진까지…프랑스 대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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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폭력 시위자들을 추격하는 전투경찰들. 경찰은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 가담자 1311명을 체포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폭력 시위자들을 추격하는 전투경찰들. 경찰은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 가담자 1311명을 체포 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교통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알제리계 17세 소년 나엘이 경찰 총격에 숨진 사건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인종 차별과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폭력 시위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3년 만의 독일 국빈 방문까지 연기하며 상황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며 사태가 수그러들지 주목된다.

프랑스 당국은 밤사이 719명을 체포했다고 2일(현지시간)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전날엔 1300여명이 체포됐다. 지금까지 체포된 인원은 3700명이 넘는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이날 트위터에 “치안 당국의 단호한 대응 덕분에 더 평온한 밤이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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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가담자들은 자동차에 불을 지르거나, 전자제품 매장·수퍼마켓·담배 가게 등의 유리창을 깨고 물건을 약탈했다. 이날 새벽 파리 남부 소도시 라이레로즈에서는 폭도들이 차를 몰아 뱅상 장브룬 시장의 집 출입문으로 돌진해 진입한 뒤 차에 불을 붙였다. 이들은 집에서 자다 놀라서 깬 시장 부인과 5살, 7살 된 자녀에게 폭죽을 쐈고 시장 부인은 도망치다 다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시장은 시청에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방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폭도들이 살해 의도가 있었는지 수사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와 다르마냉 장관은 라이레로즈를 방문해 시장을 위로했다.

내무부 집계에 따르면 1일까지 자동차 1350대와 건물 234채가 불에 탔고, 화재 2560건이 발생했다. 내무부는 현재 주요 도시에 경찰 인력 4만5000명을 배치하고 시위 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수 정예 부대·장갑차·헬리콥터 등이 동원됐다.

이날 파리 북쪽 포르도베르빌리에 버스터미널에 시위대의 방화로 잔해만 남은 버스들. [신화=연합뉴스]

이날 파리 북쪽 포르도베르빌리에 버스터미널에 시위대의 방화로 잔해만 남은 버스들. [신화=연합뉴스]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내무부는 지난달 30일 지방 당국에 오후 9시 이후 버스와 트램 운행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일부 지역에선 야간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대형 폭죽과 인화성 액체도 안전을 이유로 판매 제한에 들어갔다.

이 같은 조치에도 프랑스 남부 대도시 마르세유 등에선 격렬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시위가 잦아들지 않자 프랑스 명품 기업 LVMH의 브랜드 셀린느가 2일 예정이던 ‘2024 남성복 쇼’ 개최를 취소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3년 만의 독일 국빈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엘리제궁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초청으로 2~4일 독일 국빈 방문 예정이었지만 국내 상황을 고려해 연기했다.

외신들은 “내년 개최될 파리 여름올림픽을 앞두고 대외적 이미지에 타격을 준 이번 시위는 마크롱 대통령에 정치적인 부담을 줬다”고 평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이후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분노해 일어난 ‘노란 조끼’ 시위, 올해 초부터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 시달린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가 격화하고 있던 지난달 28일 밤 가수 엘턴 존의 공연을 보러 간 모습이 포착되면서 극우 야당 정치인들로부터 비판받기도 했다.

마크롱, 시위 속 엘턴 존 공연 관람 논란

마크롱

마크롱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200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당시 발생한 시위 이후 최악의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당시 프랑스 파리 북부 지역에서 아프리카 출신의 10대 2명이 경찰을 피해 변전소 담을 넘다가 감전사한 사건을 계기로 두 달간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나 차량 약 1만 대가 불탔고 미성년자 등 3000여 명이 체포됐다. 시라크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었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27일 파리 외곽 낭테르의 도로에서 교통 검문을 피하려던 17세 소년 나엘이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차 안에서 숨진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경찰관은 교통 법규를 위반한 나엘의 차를 멈춰 세웠는데, 나엘이 이를 무시하고 출발하자 발포했다. 나엘은 왼팔과 흉부를 관통한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프랑스 검찰은 총기를 사용할 법적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해 해당 경찰관을 구속 수사 중이다.

나엘의 가족과 유족들은 지난 1일 나엘이 살던 곳이자 사건이 발생한 낭테르의 한 모스크에서 이슬람 전통 의식에 따라 나엘의 장례식을 침묵 속에 치렀다. 장례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나엘의 어머니는 “경찰 전체가 아니라, 아들을 총살한 경찰관에 화가 난다”면서 “아랍인 외모의 아이라는 이유로 당장 죽이고 싶어한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나엘의 죽음이 폭력 시위로 격화된 건 오랜 기간 인종 차별과 빈곤 등을 겪어온 이민자 출신 프랑스인의 분노에 불을 붙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 언론은 최근 몇 년간 프랑스의 교통 검문 과정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이들이 늘었는데, 희생자 대부분이 흑인·아랍계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나엘의 사건을 2020년 미국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비교하고 있다.

음바페 “폭력 사라져야” 시위 중단 촉구

한편 폭력 시위를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성명을 통해 “폭력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했다. 대표팀 주장인 킬리안 음바페는 트위터에 “폭력은 애도와 대화, 재건을 위해 사라져야 한다”고 전했다. 음바페는 카메룬 출신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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