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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없는 심해는 없더라”…비에 대한 영감 담은 신곡 '투둑투둑' 낸 가수 김현철

중앙일보

입력

가수 김현철이 지난달 14일 새 미니앨범 '투둑투둑'으로 돌아왔다. 사진 Fe&Me

가수 김현철이 지난달 14일 새 미니앨범 '투둑투둑'으로 돌아왔다. 사진 Fe&Me

우르르 쾅쾅. 가수 김현철(54)의 신곡 ‘투둑투둑’은 강렬한 천둥과 쏟아지는 빗소리로 시작한다. 비를 피해 찾아간 레코드 가게 처마 밑 설레는 만남이 노래를 듣는 내내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진다. 지난달 2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현철은 신곡에 대해 “요즘 친구들의 얘기가 아니다. 제가 학생 때의 얘기, 그러니까 저희 세대를 위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비를 맞는 것도,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해요. 계절적인 것들을 제가 꽤 좋아하나 봐요.” 이번 미니 앨범의 소재로 비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어 “일을 할 때 특별한 이유를 갖고 하기보단 즉흥적인 편인데, 이번 앨범도 그렇다”며 “제 노래 중 비 노래만 네다섯곡이라 콘서트를 할 때마다 비 노래를 하게 된다. 편곡한 버전이 아깝다는 생각에 앨범 작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14일 발매한 김현철의 미니앨범 '투둑투둑'에는 비를 소재로 한 4곡의 노래가 담겼다. 앨범명과 동일한 신곡 '투둑투둑'을 필두로 그가 1989년 발매한 1집의 '비가 와', 1998년 발매한 6집의 '서울도 비가 오면 괜찮은 도시'를 새롭게 편곡한 곡이 포함됐다. 1994년 동료 가수 장혜진을 위해 작업했던 숨은 명곡 '우(雨)'도 그의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김현철은 이번 미니앨범을 '12-1집'이라고 했는데, 겨울에 눈을 소재로 한 노래들을 '12-2집'으로 묶어 내년 초쯤 정규 12집을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정규 앨범의 절반 정도를 이번 미니 앨범을 통해 미리 보여준 셈이다.

김현철 미니 12-1집 '투둑투둑' 앨범 커버. 사진 Fe&Me

김현철 미니 12-1집 '투둑투둑' 앨범 커버. 사진 Fe&Me

그에겐 음악적 공백기가 있었다. 2006년 정규 9집 '토크 어바웃 러브'(Talk About Love) 이후 2019년 정규 10집 '돛'으로 돌아오기까지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1989년부터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주기로 정규 앨범을 냈던 것과 비교하면 긴 시간이었다. 그는 “옛날엔 음악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면서 “사실 그 시기의 슬럼프는 ‘내가 왜 이러지’ 고뇌하고 괴로워했다기보다는 덤덤하게 ‘이대로 가면 음악을 못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긴 공백 끝에 다시 곡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는 “문득 음악을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 '신곡을 썼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나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사고든 건강이든 무엇 때문이든 언제 죽을지 앞을 모르기 때문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라면서 “젊었을 땐 마냥 오래 살 줄만 알고, 이런 생각을 못 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신곡의 가사("젊은 줄도 모르는 우리 지난 젊은 날")에도 그런 단상을 녹였다.

시티팝 스타일의 원조라 불리는 그지만, 정작 수식어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젊은 날부터 나이가 들기까지,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음악을 차곡차곡 끝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늙어감을 할 수 없이 받아들이기보다 환영하는 편”이라며 “제 노래도 저와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이 들어 흰 머리가 나고 눈가 주름이 생기고 불편하지만 자연스러운 모습, 즉 50대, 60대를 지나 제가 늙어가는 모습이 노래에 담기길 바란다”고 했다. 빠르게 바뀌는 젊은 감각을 허겁지겁 담아내기보다는 살아온 인생이 깃든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음악이 곧 삶을 보여주는 만큼 협업은 늘 의미 있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백지영, 정인, 박효신, 마마무 화사·휘인, 새소년 황소윤 등 다양한 장르와 연령대의 후배들과 함께해 왔다. 이번 앨범에 함께한 애슐리 박은 그의 조카다. 그는 “노래를 잘한다고 해서 작업을 함께 하진 않는다”고 했다. “소속사나 매니저를 통해서 함께 하는 음악 작업은 제게 큰 의미가 없다”며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 친해진 사람을 위해 쓰는 곡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13년의 음악 공백기를 깨고 돌아온 이후 김현철은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완벽한 노래보다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내 노래가 나와 같이 나이 들어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 Fe&Me

13년의 음악 공백기를 깨고 돌아온 이후 김현철은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완벽한 노래보다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내 노래가 나와 같이 나이 들어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 Fe&Me

김현철은 매일 저녁 MBC 라디오 프로그램(원더풀라디오 김현철입니다)를 진행한다. 지금은 하차한 '복면가왕'(MBC) 패널부터 최근 맡은 국악방송 프로그램(인생낭독:인) MC까지 방송 활동도 활발하다. 음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생각에서다.
 “‘앨범 안 팔리면 어떡하지’ ‘얼마 이상은 팔려야 생활이 가능할 텐데’ 이러한 부담에서 지금은 거의 벗어났다”며 “2~3년 히트곡 내고 그만할 것 아니고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할 것이기 때문에 음악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닌 포트폴리오 작전인 것”이라고 했다. “방송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음악적으로나 인생에서나 큰 영감을 받는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고도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35년간의 음악 활동을 통해 김현철은 진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진짜 음악을 좋아한다면 몇 년 못한다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한다”며 "‘이제 음반을 못 내는 건가’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13년 만에 다시 음악을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해나간다. 어떤 심해라도 바닥은 있다. 바닥없는 심해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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