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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도 성숙해지는 KBO리그…예우가 만든 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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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요키시가 6월 24일 키움 구단이 마련한 송별회를 통해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에릭 요키시가 6월 24일 키움 구단이 마련한 송별회를 통해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사진 키움 히어로즈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는 지난달 24일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홈구장 고척스카이돔에서 외국인투수 에릭 요키시(34·미국)의 환송식을 열었다. 2019년부터 활약했던 요키시는 왼쪽 허벅지 부상이 심해져 최근 방출이 확정됐고, 이날 팬들과의 마지막 만남을 끝으로 키움을 떠났다.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보통 외국인선수가 한국을 떠나게 되면 선수단과의 상견례 정도로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간혹 눈물의 송별회가 있기도 하지만, 이는 5년 이상을 뛴 몇몇 장수 외국인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이날의 풍경은 기존과 사뭇 달랐다. 팬들과 눈물로 이별한 요키시는 “이런 결말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는 슬프지 않다. 지난 5년 동안 환상적인 한국 생활을 했고,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2019년 처음 버건디 유니폼을 입은 요키시는 데뷔와 함께 13승을 거두며 새로운 에이스가 됐다. 이어 이듬해에도 12승을 챙기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2021년에는 커리어하이도 찍었다. 31경기에서 16승 9패 평균자책점 2.93을 기록했다. 그렇게 키움과 요키시의 동행은 계속됐지만, 5년차를 맞는 올 시즌 12경기 5승 3패 평균자책점 4.39로 부진하고 부상까지 도져 계약이 해지됐다.

키움은 그동안 최선을 다한 요키시를 깍듯이 예우했다. 이날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팬 100명을 초청해 요키시만을 위한 사인회를 열었다. 또, 경기 후에는 요키시가 팬들과 동료들 앞에서 다시 한 번 인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요키시는 “그간 KBO리그에서 뛰었던 외국인선수가 이런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정말 감사하다. 또, 다시 돌아와 달라고 말한 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며 언제가 될지 모를 재회를 약속했다.

KBO리그는 1998년부터 외국인선수 제도를 시행했다. 초기에는 국내선수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평가가 있었다. 몇몇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자주 사고를 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외국인선수 없이는 프로야구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꼭 필요한 존재가 됐다.

에릭 요키시가 6월 24일 키움 구단이 마련한 송별회를 통해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팬들을 위한 사인회를 연 요키시. 사진 키움 히어로즈

에릭 요키시가 6월 24일 키움 구단이 마련한 송별회를 통해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팬들을 위한 사인회를 연 요키시. 사진 키움 히어로즈

그러면서 이별의 방식도 성숙해지고, 섬세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KT 위즈를 떠났던 외국인투수 윌리엄 쿠에바스(33·베네수엘라)다. 요키시처럼 2019년부터 KBO리그에서 뛴 쿠에바스는 지난해 5월 팔꿈치 부상으로 짐을 싸야 했다. 2021년 KT의 사상 첫 번째 통합우승을 이끌었던 에이스의 퇴출. KT는 쿠에바스의 공로를 인정해 지난해 5월 18일 LG 트윈스와의 홈경기에서 송별식을 마련했다. 5회말이 끝난 뒤 쿠에바스와 가족들이 수원케이티위즈파크 1루 관중석으로 올라와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시간이었다. 쿠에바스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오늘이 영원한 작별이 아니라 다시 보게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그런데 쿠에바스의 이별 메시지는 현실이 됐다. 쿠에바스가 KT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재영입돼 지난달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최근 만난 쿠에바스는 “다시 KT 유니폼을 입게 될지는 나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송별식의 기억이 나를 여기로 돌아오게 했다”고 말했다.

KT 윌리엄 쿠에바스가 2021년 통합우승 당시 자신이 나온 사진을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다. 수원=고봉준 기자

KT 윌리엄 쿠에바스가 2021년 통합우승 당시 자신이 나온 사진을 가리키며 활짝 웃고 있다. 수원=고봉준 기자

사실 쿠에바스는 올 시즌 도중 다른 유니폼을 입을 뻔했다. 외국인투수 교체를 고려한 몇몇 구단이 쿠에바스 영입을 꾀했다. 그러나 쿠에바스가 선택한 것은 KT와의 의리였다.

쿠에바스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이현명(36) 통역은 “환송식 같은 자리는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외국인선수는 낯선 곳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지 않나.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그렇게라도 나눌 수 있다면 따뜻한 감정이 생기리라고 본다. 쿠에바스 역시 지난해 아쉬움과 고마움을 함께 느껴 다시 돌아오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18일 KT 구단이 마련한 송별회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윌리엄 쿠에바스. 사진 KT 위즈

지난해 5월 18일 KT 구단이 마련한 송별회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윌리엄 쿠에바스. 사진 KT 위즈

환대 속에서 재영입된 쿠에바스는 현재까지 3경기에서 1승 평균자책점 3.24(16과 3분의 2이닝 6자책점)로 호투하며 보 슐서(29·미국)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는 쿠에바스를 비롯해 두산 라울 알칸타라(31·도미니카공화국)와 브랜든 와델(29), 키움 에디슨 러셀(29·이상 미국) 등 유턴파 외국인선수들이 계속 활약하고 있다. 이별이 아름답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재회. KBO리그는 이렇게 한 뼘 더 성숙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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