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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뺑뺑이' 전공의 기소 위기…"이대병원 사태 재현" 반발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29일 저녁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환자를 긴급 이송한 119 구급대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9일 저녁 서울 동작구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환자를 긴급 이송한 119 구급대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지난 3월 대구에서 응급실을 찾지 못해 구급차에서 숨진 10대 사건과 관련해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수사를 진행하자 의료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응급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에서 촉발된 사건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며 “향후 전공의들의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으로 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30일 의협은 전날 이필수 의협회장 등 임원진이 대구파티마병원을 방문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전공의 A씨를 위로했다고 밝혔다. 대구 북부경찰서는 10대 여학생 사망 사건에서 전공의 3년 차 A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없다’는 응급의료법 제48조2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의협 “대구 10대 사망 사건, 응급의료 구조적 문제”  

앞서 지난 3월 19일 대구에선 건물 4층에서 떨어져 골목길에 쓰러진 채 발견된 17세 환자가 병상을 구하지 못해 구급차에서 2시간을 허비하다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119 구급대는 지역응급의료센터인 대구파티마병원을 가장 먼저 찾았는데 의협에 따르면 당시 근무 중이던 전공의 A씨는 환자의 의식이 명료하고 활력 징후가 안정적이라는 점, 환자의 자살시도가 의심된다는 119 구급대의 설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신건강의학과 입원 치료가 가능한 경북대병원으로 전원을 권했다.

이후 다른 병원 응급실 문턱을 넘지 못하고 환자가 사망하자 지난 5월 합동조사를 실시한 복지부는 응급환자의 주요 증상, 활력 징후, 의식 수준, 손상 기전, 통증 정도 등을 고려해 중증도를 분류하도록 한 응급의료법과 시행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파티마병원 측에 과징금 부과 등의 행정처분을 내렸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복지부의 행정처분에 이어 최근 경찰이 전공의 A씨를 기소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번 사건은 응급의료체계와 의료시스템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인데 그 책임을 피교육생 신분인 전공의에게 지우는 것은 우리 사회와 국가가 제대로 된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홍수 대구광역시의사회장은 “이번 사건은 환자를 안 보고 돌려보낸 게 아니라 환자를 진찰하고 판단한 후 상급종합병원으로 후송한 정당한 의료행위다.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처벌받는다면 응급의료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곧 시민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료계 “제2의 이대목동 사태 재현되나”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제2의 이대목동병원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난 2017년 검찰은 서울 이대목동병원 집중치료실에 있던 신생아 4명이 균 감염으로 사망하자 의료진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의료진들은 1심과 2심, 그리고 최종 대법원 판결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 공포가 커지면서 2017년 100%를 넘겼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023년 10%대까지 떨어졌다.

류현호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일부 과에서는 중환자나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를 봐야 하는데 고의나 명백한 실수가 없었는데도 결과에만 집중해 의료진을 처벌하면 결국 응급 중환자를 볼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전공의는 게이트키퍼로 환자를 만난 죄밖에 없는데 사망한 환자의 책임을 그에게 뒤집어씌운다면 이대목동병원 사태 때처럼 젊은 의사들이 응급의학과를 기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등을 통해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의료인들의 법적 부담을 해소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협은 다음 달 3일 이번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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