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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알력 탓 정권 붕괴 잦아…FT “푸틴 권력 균열 시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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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6호 14면

무장 반란 파장, 혼돈의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 이후 모스크바를 벗어나는 첫 공식 행보로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데르벤트를 방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 이후 모스크바를 벗어나는 첫 공식 행보로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데르벤트를 방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러시아에서 급박하게 진행된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은 전 세계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무엇보다 집권 23년 만에 초유의 사태를 맞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요한 건 사태의 본질적인 원인이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은 푸틴 대통령의 장기 독재에 대한 비판이나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탄약 등 보급과 군사작전, 그리고 전쟁 주도권 등 러시아의 군사적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총괄해온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등과 불화를 거듭한 게 이번 반란의 도화선이 됐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번 반란 사태는 군사 분야의 공식 조직과 비공식 조직 수장끼리 내부적으로 집안싸움을 벌인 거나 진배없다. 푸틴 대통령이 전 세계의 눈이 쏠린 가운데 알렉산더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보호 중인 프리고진을 암살 등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이유다. 향후 바그너 그룹을 해체하거나 통폐합할 경우 우크라이나 전선에의 비공식적 병력 조달과 미국 대선에 대한 인터넷 공작, 아프리카 용병 지원 등에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수도 있다.

주목할 부분은 러시아와 옛 소련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 같은 내부 알력과 다툼이 결국엔 패전이나 정권 붕괴 등으로 이어진 전례가 적잖다는 점이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인 1914년 독일제국과 러시아제국이 양국 국경 지대인 동프로이센에서 벌인 타넨베르크 전투가 대표적이다. 이 전투에 23만 병력을 동원한 러시아군은 15만 병력의 독일군에 비해 병력·무기와 수송 능력 모두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군을 지휘한 알렉산드르 삼소노프 장군과 파울 폰 레넨캄프 장군은 1905년 러·일 전쟁 때부터 불화를 거듭한 ‘천적’ 관계였다. 이로 인해 두 장군은 타넨베르크에서도 협력하지 않았고, 이를 간파한 독일군에 각개 격파되면서 상당수 병력이 포위·섬멸됐다.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계속 밀린 러시아제국과 로마노프 왕조는 결국 1917년 3월 혁명으로 무너졌다.

3월 혁명으로 들어선 의회 다수파(멘셰비키) 지도자 알렉산드르 케렌스키의 임시정부도 내부 균열로 전복됐다. 1917년 9월 전쟁 영웅인 라브르 코르닐로프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기도했다 실패하면서 임시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잃고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이를 틈타 그해 11월 볼셰비키가 무장봉기로 권력을 잡았고 이는 적백 내전과 소련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4일 연설에서 “러시아가 1차 대전을 벌이던 1917년에도 등에 칼을 꽂는 공격이 가해졌다”고 말한 것도 이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옛 소련 때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8월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실패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크게 흔들린 옛 소련은 결국 그해 12월 무너진 뒤 12개의 독립국가로 재편되는 운명을 맞게 됐다.

이후 새로운 러시아의 정치적 구심점으로 자리 잡은 보리스 옐친은 공산당을 불법화하고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을 주도했다. 하지만 의회격인 최고소비에트가 급속한 변화에 제동을 걸면서 갈등이 불거졌고 이로 인해 1993년엔 헌정 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옐친이 그해 9월 의회를 해산하자 의회가 이틀 뒤 옐친을 탄핵하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옐친은 모스크바로 군대를 불러 의회를 점령하고 나서야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대통령과 의회가 수도 한복판에서 유혈극을 벌인 셈이다.

이번 반란에서 드러난 푸틴 대통령의 대처 방식에도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이 적잖게 작용했다는 게 서방 언론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푸틴 대통령이 유혈 사태를 피하기 위해 루카센코 대통령의 중재안을 받아들인 데는 무장 반란에 따른 후폭풍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이제 국제사회의 관심은 푸틴 대통령이 과연 내년 5월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며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이번 사태는 푸틴 대통령에겐 위기 탈출이 아니라 권력 균열의 시작”이라고 지적한 것도, 뉴욕타임스가 “푸틴 대통령이 23년 통치에서 최악의 위협에 직면했다”고 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푸틴의 러시아는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잖다. 푸틴 대통령의 권력은 대중의 지지가 아니라 ‘대중의 공포심’을 바탕에 두고 있는 만큼 무장 반란으로 위신이 좀 깎였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그의 권력 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제사회에서는 푸틴 정권을 떠받쳐온 핵심 세력인 ‘실로비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한 뒤 KGB 등 정보기관과 특수부대·군산복합체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실로비키와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로 권력 이너서클을 구성해 국가를 통치해 왔다.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란 뜻의 실로비키는 이후 공포심과 애국주의를 앞세워 에너지와 군수 분야를 장악하며 세를 넓혀 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배제되다 보니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이나 글로벌 공급망 등 세계화 추세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핵과 우주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러시아가 최근 반도체 부품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고전하는 요인 중 하나로도 꼽힌다.

문제는 실로비키 중심의 권력 체제가 지속·강화되면서 어느새 푸틴 대통령과 실로비키가 정치적 운명 공동체가 돼버렸다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이 당분간 미디어 통제 강화 등 정치적 비판을 원천봉쇄하면서 현재의 권력 체제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실로비키도 푸틴 외엔 다른 정치적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내부 분열이 정권 붕괴로 이어진 러시아의 역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푸틴의 권력이 공고해 보이지만 한순간에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채인택 전중앙일보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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