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디터 프리즘] 강남좌파 카르텔 향한 섀도복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46호 30면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세계 최대의 온라인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은 2016년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에서 오프라인 매장 ‘아마존 고’를 선보였다. 매장에 수백 대의 카메라를 배치해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집어 들고나오면 얼굴 인식 기술을 통해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진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설 필요가 없는 ‘저스트 워크 아웃’ 매장은 유통의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아마존은 2018년 매장을 대중에 공개하면서 “2021년까지 3000개로 늘리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7년이 지난 지금, 아마존 고는 망했다. 지난 3월 뉴욕·시애틀·샌프란시스코의 8개 매장문을 닫았다. 현재 미국에 31개 매장만 남아있다. 2021년에는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을 적용한 아마존 프레시 매장을 영국에 열었다. 하지만 비싼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내년까지 영국에 260개 매장을 추가로 연다는 계획을 전면 중단했다.

고객 요구 헛짚은 ‘아마존 고’ 실패
입시현장 모르는 윤 정부가 되풀이

이런 실패는 테크기업이 흔히 빠지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함정을 피해 가지 못한 결과다. 고객이 가장 원하는 것은 다양한 상품을 값싸게 구하는 것이다. 아마존은 엉뚱하게 계산대 앞에서 허비하는 시간에 초점을 맞췄다가 낭패를 봤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킬러 문항’과 ‘사교육 카르텔’ 그리고 ‘일타강사’를 지목해 수능 개혁에 나섰다. 국세청은 메가스터디, 시대인재 등 대형 학원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떠올리게 하는 광폭 행보다. 연 26조원에 달하는 사교육 시장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부분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래도 시험날이 15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킬러 문항을 중심으로 수능 난이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목표에도, 방식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킬러 문항이 사교육의 주범인지부터 의문이다. 윤 대통령은 “약자인 아이들 데리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분노했다. 학교에서 듣도 보도 못한 문제를 풀어야 하니 학생들은 학원에 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일타강사들이 해마다 100억원씩 버는 것은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고 질타했다. 여권도 “사교육을 장악한 86세대 강남좌파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하지만 최근 입시를 치른 학부모라면 이게 얼마나 얄팍한 논리인지 대번에 안다.

나도 두 아이가 대학에 간 다음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내고 용돈을 줘도 생활비가 전보다 넉넉해진 것을 체감할 정도로 사교육비 부담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수시 대비반이나 논술학원 비용이 컸지 인강이 부담스러웠던 적은 없다. 요즘도 일타강사가 진행하는 킬러 문항 대비 강좌는 6만원이고, 전 과목 대비 무제한 인강은 1년에 50만원이다. 킬러 문항을 없애고 일타강사를 치면 사교육이 줄어든다는 건 입시 현장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입시의 근본적인 문제는 학벌이 취업과 결혼까지 좌우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중간 문제는 학교 친구들과 실수 안 하기 경쟁을 자극하는 내신이다. 100명이 시험을 봐서 10명이 만점을 받으면 모두 2등급이 된다. 12등과 23등은 같은 3등급이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 문제풀이 대비 사교육에 매달릴 수밖에. 게다가 학생부 교과, 종합, 논술 등 3000가지에 달한다는 수시는 학원이 아니면 준비조차 어렵다. 그나마 만만한 수능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 결과가 일타강사다. 86세대 카르텔이라고? 요즘 일타강사는 86년생이다.

원인은 건드리지 않고 결과만 문제 삼으니 아마존 고 처럼 엉뚱한 처방이 나온다. 게다가 뭐가 그리 급한가. 교육부는 고교학점제에 맞춘 2028년 대입 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제라도 수능의 역할 조정, 수시 제도 개선 등을 통해 사교육을 최소화할 방법을 차분히 논의해 보자. 수능 난이도 조정은 그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