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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더 안 갈 것"…위기의 임산부 놓친다, 출생통보제 보완책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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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운영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에 있는 '베이비박스'가 열려 있는 모습. 사진 나운채 기자

지난 3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운영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에 있는 '베이비박스'가 열려 있는 모습. 사진 나운채 기자

‘그림자 아이’ 발생을 방지하는 출생통보제 관련 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남기고 있지만 ‘병원 밖 출산’이라는 사각지대가 여전해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보호출산제를 함께 도입해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출생통보제 사각지대 ‘병원 밖 출산’ 어쩌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9일 전체회의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의결했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아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거쳐 지자체에 통보하는 제도다. 최근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출생신고가 안 된 영아가 살해 또는 유기되는 사례가 사회적 주목을 받으면서 입법이 급물살을 탔다. 법안은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것으로 보인다. 공포일로부터 1년 후에 시행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출생통보제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 관련 범죄 등을 예방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출산 사실을 숨기려 병원 출산을 기피할 산모가 늘어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건복지부·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병원 밖 출산 사례는 전체 출산 가운데 약 1%를 차지해 연간 100~200건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혼모 강모(18·여)씨는 “미성년자들은 부모에게 임신을 알리기 극히 두려워하는데 이런 제도로 오히려 병원에 가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인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의 양승원 사무국장은 “상담 사례를 보면 강간 등 성범죄 피해자나 10대 미혼모, 난민을 포함한 불법체류자가 적지 않은데 이들은 임신 사실을 알리기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주사랑공동체 자체 조사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5월까지 미혼모가 고시원·화장실·모텔 등에서 혼자 아이를 낳은 사례는 모두 78건(명)으로 파악됐다. 지난 5월에만 미혼모 6명이 병원 밖 출산을 했다. 양 국장은 “베이비박스에 오는 미혼모 10%가 위험한 장소에서 자가 분만을 한다”라며“ 2000명 가운데 200명이 이렇게 낳는 꼴인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10대 미혼모 등 ‘위기 임산부’를 돕는 민간단체들은 위기 임산부를 위한 사회적 지원체계가 출생통보제와 같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비혼모 긴급지원단체인 사단법인 여성인권동감의 최미라 대표는 “어쩔 수 없이 홀로 아이를 낳은 여성에 대한 양육 지원 등 보호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만 추진된다면 여성들이 더 위험한 상황(병원 밖 출산)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도 “위기에 빠진 영아와 엄마를 둘 다 살릴 수 있는 건 출생통보제뿐 아니라 금전적 도움과 같은 지원 체계”라며 “이를 엄마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지원이 탄탄하다면 아이를 포기하는 엄마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찬반론 속 보호출산제 도입은…  

신생아. 사진 픽사베이

신생아. 사진 픽사베이

정부와 여당은 출생통보제로 우려되는 병원 밖 출산을 막기 위해 보호출산제도 함께 도입하기로 했다. 보호출산제는 위기 산모가 병원에서 익명으로 낳은 아동을 국가가 보호하는 제도다. 산모의 양육 포기가 늘어날 우려 때문에 도입 찬반론이 맞붙고 있다. 관련 특별법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돼있다.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이날 전체회의에서 “병원 밖 출산 증가 등 사각지대 발생 우려와 관련해 미혼모 입양아 등의 입장이 반영된 보호출산제가 보완적으로 마련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도 보호출산제 병행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보호출산제 없는 출생통보제는 오히려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려 아이를 키우기 힘든 미혼모 등이 영아를 제대로 돌보지 못할 가능성이 커져 임산부와 신생아 건강을 위험에 빠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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