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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승우의 미래의학

진단도 치료도 세분화, 정밀의료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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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필자가 의대에 입학할 때에는 교육 과정을 마치면 각종 질병에 대한 원인과 해결 방안을 명쾌하게 이해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실제 현장에서 환자를 대면하면서 세상 모든 일처럼 질병도 원인이 각각 다르며 치료 효과 역시 너무나 복잡·미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서 의학이 밝혀낸 과학적 정보를 근거로 그동안의 경험에 기대어 어떤 질환인지 규정하고 치료법을 결정해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치료가 지금보다 단순해 고혈압 환자라면 혈압약을, 부정맥 환자이면 부정맥 치료제를 처방하면 됐다. 환자들도 대개 그 정도 치료를 예상하고 병원을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의학의 발달과 함께 질환도 더욱 세분화하면서 의사들도 본인 전공이 아닌 영역에서는 생소한 질환이 늘어나고 있다.

의학 발전 따라 의료현장 급변
환자 특성 맞춘 치료법 늘어나
나라마다 정밀의료 경쟁 치열
환자 위한 마음은 변할 수 없어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폐고혈압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고혈압이라는 말이 들어 있지만 흔히 생각하는 고혈압과는 전혀 다른 질환이다. 폐고혈압은 폐를 지나는 혈관의 압력이 높아져 생기는 병인데 이를 세분화하면 최소 5개 이상의 질환으로 나뉘며, 그 치료법은 모두 다르다. 그중에서도 오래된 혈전이 혈관을 막아서 생기는 만성폐색전성 폐고혈압은 수술이나 시술로 치료할 수 있지만, 혈관 자체가 좁아져 생기는 폐동맥고혈압은 특수한 약제로 치료해야 한다.

특히 원발성 폐동맥고혈압은 치료하지 않으면 환자가 2~3년 정도밖에 살지 못하는 위중한 질환이다. 어린이날인 5월 5일은 ‘세계 폐고혈압의 날’이기도 한데, 위중한 병임에도 의사도 환자도 몰라서 치료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일부러 날을 정해 홍보하고 있다.

이처럼 진단과 검사 방법이 발전하고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유사한 증상을 동일한 질환으로 간주해 치료하는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 이에 새 이름을 얻은 질환이 등장하고 치료법도 좀 더 세밀해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정밀의료의 모습이다.

지난 2015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정밀의료 계획(Precision Medicine Initiative)’을 발표한 바 있다. 환자가 지내온 환경과 생활 등을 종합해 병을 진단하는 데서 나아가 유전자를 포함해 보다 정확히 환자를 진단하고, 더 정교한 치료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뒤 전 세계가 정밀의료를 향해 뛰어가고 있다. 유전자 검사 기법이 발전하고, 비용도 내려가면서 보편적으로 쓸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던 듯하다.

실제로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전장 유전체 검사를 하려면 수천만원을 들여서 몇 달을 기다려야 했는데 지금은 100만원대로 가격이 내렸고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방식으로 한 달이 채 안 되어 결과를 볼 수 있다.

최근 해외에서는 이보다 더 낮은 수백 달러, 우리 돈으로 수십만원이면 유전체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하며 소비자가 직접 시행을 요청한 유전자 검사 시장도 새로 열리면서 국내 기업들도 앞다투어 산업을 키워가고 있다. 모두 정밀의료 시대의 단면이다.

덕분에 새로운 치료법도 속속 등장해 환자들에게 희망을, 의료진들에게 보다 효율적인 치료를 가능케 해준다. 전쟁터에 비유하자면 과거엔 융단폭격하듯 치료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지금은 인공위성을 달고 목표물만 정확하게 타격하는 것처럼 치료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정밀의료의 시대에는 의료 현장도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기존의 진료체계에선 환자를 치료하기 어렵다. 아밀로이드증이 그렇다. 아밀로이드는 일종의 비정상적인 단백질로서 전신 장기에 침착하기 시작하면 큰 문제를 일으키는데 주로 심장과 신장, 간 등에 쌓이며 서서히 망가뜨린다. 전신 질환이라서 한 명의 의사가 환자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에 우리 병원은 2019년에 여러 진료과가 함께 치료법을 모색하는 아밀로이드증 센터를 개소한 바 있다. 정밀의료 시대에는 여러 진료과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어야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역시 이러한 변화를 돕고 있다.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환자의 생활습관에서 오는 각종 생체정보가 유의미한 정보로 바뀌어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쓰이고 있다. 심박수나 혈압을 스마트워치로 재는 일은 이제 익숙한 일이다. 최근 큰 주목을 끌고 있는 인공지능이나 전자약, 메타버스 역시 의료 현장의 모습을 바꿀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대원칙이 있다. 모든 것은 환자를 중심으로,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다하려는 의료인의 마음과 자세다. 그런 믿음의 토대 위에 의료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