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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2년간 1승 25패, 추락한 여자배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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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 에르난데스 한국 여자배구 감독. 뉴스1

세자르 에르난데스 한국 여자배구 감독. 뉴스1

1승 25패. 2020 도쿄올림픽 4강 신화 이후 여자 배구 대표팀이 2년간 거둔 성적이다. 세계랭킹은 무려 스무 계단이나 추락했다.

세자르 에르난데스(스페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27일 경기도 서수원 칠보체육관에서 열린 2023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1-3(22-25, 18-25, 26-24, 15-25)으로 졌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개막 이후 9전 전패를 기록했다. 7경기가 무려 0-3 패배였고, 나머지 두 경기도 1-3으로 졌다. 승점은 1점도 못 땄다.

지난해 VNL에서 한국은 12전 전패를 기록하면서 최하위에 머물렀다. 안방에서 3경기가 남았지만, 이번에도 같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도미니카공화국, 중국, 폴란드와의 경기도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은 도쿄올림픽 이후 '배구 여제' 김연경(35·흥국생명)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김연경과 함께 대표팀을 이끈 미들블로커 양효진(33·현대건설), 김수지(36·흥국생명)도 함께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대표팀의 중추인 선수들이 빠지면서 자연히 전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선수단을 이끈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도 떠났다.

예고된 추락이었지만,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개편했으나 2년 동안 나아진 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라바리니 감독 시절 전력분석 코치였던 에르난데스가 지휘봉을 잡았으나 세계선수권에서 크로아티아를 이긴 게 유일한 승리였을 뿐이다. 14위였던 세계랭킹은 34위(28일 현재)까지 떨어졌다.

27일 불가리아전을 마친 에르난데스 감독은 성적 부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전술에는 문제가 없다. 선수들이 국제대회 수준의 맥락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게 부족하다"고 했다. 이어 "공격적인 측면에서 지난해에 비해 경쟁력을 갖췄다. 새로 합류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성장시킬 수 있는 부분도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불가리아전에서 패한 한국 선수단의 모습(아래). 뉴스1

불가리아전에서 패한 한국 선수단의 모습(아래). 뉴스1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세계적인 선수들과 부족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강소휘도 "세계적인 수준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실감해 부끄럽다. 그동안 국내에서 안일하게 배구를 했다"며 반성했다. 한 국내 지도자는 "냉정하게 김연경이 빠진 자리를 메울 선수는 없다. 외국인 선수보다 몸값이 비싸지만, 다른 나라 국가대표 선수들과는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했다.

에르난데스 감독은 "VNL 초반에는 훈련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감독의 책임도 있다. 에르난데스 감독은 튀르키예 바키프방크 코치을 겸임하고 있다. 당초 5월에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었던 에르난데스 감독은 튀르키예 지진으로 리그 종료가 연기되는 바람에 소집 훈련을 한 번도 지휘하지 못했다.

결국 한유미 코치와 어드바이저를 맡은 김연경이 선수들의 훈련을 도왔다. 유선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지만, 선수들의 기량이나 컨디션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라바리니 감독 시절 코치로 2년간 한국 대표팀을 지도했지만, 선수진은 그 때와 많이 달라졌다.

클럽과 대표팀을 병행하는 건 세계적인 추세다. 폴란드를 1위로 이끌고 있는 라바리니 감독도 겨울엔 소속팀을 맡다가, 여름에만 대표팀을 맡는다. 독일 감독인 비탈 헤이넨도 튀르키예 뉠리페르 사령탑을 겸임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파 위주인 한국 대표팀에서 이런 방식이 효율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세계적인 지도자를 영입해 국제 배구 흐름을 좇는 건 좋지만, 훈련조차 함께 할 수 없다는 건 큰 문제다. 게다가 한국은 세대교체중이다. 1분 1초라도 더 많이 선수들과 소통하고 훈련하는 게 급선무다. 에르난데스 감독을 선임한 대한배구협회의 선택이 아쉬운 이유다.

대표팀은 VNL을 마친 뒤 9월 2024 파리올림픽 예선,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선다. 올림픽 예선은 VNL보다 치열하다. VNL에서 전패를 기록한 대표팀이 8개국 중 2위 안에 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에르난데스 감독은 "올림픽에 가는 게 불가능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올림픽에 갈 수 없게 된다면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이라고 했다. 에르난데스 감독의 계약기간은 올해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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