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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라면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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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보글보글 끓여 한 젓가락 뜬다. ‘후후’ 불어도 뜨겁지만 참고 먹어야 제맛이다. 국물에 김치 한 조각까지 얹어 먹으면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다른 음식과의 궁합도 좋다. 찌개나 볶음 어디든 넣기만 하면 색다른 두 번째 요리가 탄생한다. 단돈 1000원이면 충분하니 이만한 가성비가 없다.

이탈리아 파스타, 베트남 쌀국수처럼 한국에도 냉면과 막국수가 있다. 그래도 라면을 이길 순 없다. 한국의 1인당 라면 소비량은 연간 77개로 세계 2위다. 라면 사랑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윗세대는 어려웠던 시절 끼니를 대신했던 습관 때문에 먹고, 젊은 세대는 어떻게 하면 더 맛있을까 연구도 한다. 라면의 라인업이 이례적으로 다양해진 배경이다.

라면은 이제 단순한 ‘로컬 푸드’가 아니다. 지난해 사상 처음 수출 1조원을 넘어섰다. 현지 생산도 급증했다. 농심의 미국 공장 생산액은 2년 새 41.6%나 늘었다. 상승세는 K콘텐트의 성공 덕이다. 어지간한 한국 드라마나 예능에선 라면 먹는 모습이 빠지지 않는다. 그걸 전 세계가 함께 보는 시대가 왔으니 몸값이 뛰는 게 당연하다. 영화 ‘기생충’ 속 짜파구리, 매운맛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점령한 불닭볶음면이 대표적이다. 최근 해외에선 ‘신라면은 있는데 삼양라면은 왜 없느냐’ ‘유재석이 광고하는 배홍동은 어디 파느냐’ 등의 문의가 많아졌다고 한다. 소비자층이 두꺼워진다는 신호다.

국내에선 다른 이유로 시끄럽다. “밀 가격이 내린 만큼 라면값도 내려야 한다. 소비자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는 경제부총리의 발언 때문이다. 원자잿값이 뛸 때 득달같이 오르는 가격이, 내릴 땐 왜 그대로인지 분노했던 걸 떠올리면 공감이 간다. 물가 안정이 중요한 시점인 것도 맞다. 과도한 시장 개입이란 반론 역시 일리가 있다. 해외 소비자에겐 “K푸드를 더 사랑해 달라”(윤석열 대통령)고 세일즈하면서 국내 소비자에겐 라면 회사와 맞서 싸우라고 하니 앞뒤가 안 맞는 측면도 있다.

예상대로 업계가 백기를 들었다. 국내 1위 농심이 가장 먼저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봉지당 50원을 낮춘 게 물가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정부가 모든 걸 해결하겠다던 지난 정부와 대체 무엇이 다른지 의문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