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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에 '2600억'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 수출…국내 생태계 복원 '파란불'

중앙일보

입력

루마니아의 체르나보다 원전 전경. 사진 루마니아 원자력공사

루마니아의 체르나보다 원전 전경. 사진 루마니아 원자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루마니아에 2600억원 규모의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를 수출한다. 원전 단일 설비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고부가가치 일감을 새로 확보한 가운데 추가 수주의 교두보도 마련하면서 국내 원전 생태계 복원에 '파란불'이 켜졌다.

한수원과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는 27일 서울에서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TRF) 건설 계약식을 열었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동쪽으로 170㎞ 떨어진 원전 내 설비 수출 계약이다. 지난해 8월 이집트 엘다바 2차 건설 사업(약 3조원)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두 번째 원전 설비 수주다. 계약액인 2600억원(1억9500만 유로)은 지난해 한국의 대(對) 루마니아 수출액(5억3000만 달러)의 38% 수준이다.

사업 기간은 다음 달부터 2027년 8월까지로 50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한수원은 설계와 기자재 공급, 시공 및 시운전 등을 담당한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이번 계약은 원전 EPC(설계·구매·시공 전 과정을 담당하는 사업)를 유럽에서 최초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월성 원전의 삼중수소제거설비 전경. 사진 한수원

월성 원전의 삼중수소제거설비 전경. 사진 한수원

이번 프로젝트는 루마니아 측의 원전 계속운전 등을 위해 중수로 가동 시 발생하는 삼중수소를 포집·저장할 수 있는 안전 설비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방사성 동위원소인 삼중수소를 제거하면 내부 작업자 피폭 저감, 인근 주민 안전 확보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리고 저장한 삼중수소는 산업·의료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한데, 1g 가격이 약 3500만원에 달한다.

한수원은 수출 성사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2021년 6월 시작된 첫 번째 입찰에 참여했지만, 루마니아 측 사정으로 지난해 7월 해당 절차가 취소됐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2차 입찰 공고가 나면서 재도전했고, 올해 협상이 진행된 끝에 결실을 맺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발주사 재원 조달 문제로 취소됐다가 계약 성사에 이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수주를 통해 한수원의 국내 중수로 계속운전 경험과 안전설비 건설·운영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수원은 월성 원전에서 삼중수소제거설비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고, 체르나보다 원전과 동일한 노형인 월성 1호기의 개보수 작업을 캐나다 등보다 빠른 27개월 만에 마쳤다. 또한 한덕수 국무총리 등 '탈(脫) 탈원전'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 차원의 세일즈 외교도 이번 계약 성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전문가들은 향후 체르나보다 원전의 계속운전을 위한 주요 기기 교체 사업 등 2조5000억원 규모의 후속 수주에도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고 본다. 루마니아 측은 해당 사업을 내년 중 발주할 예정인데, 한수원이 기술력을 보여준다면 추가 계약도 따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전 설비뿐 아니라 루마니아를 비롯해 폴란드·체코 등 유럽 내 신규 원전 수출 경쟁에도 '플러스'(+)가 될 거란 예측이다. 루마니아 수출 계약으로 정부가 내세운 '2027년까지 해외 원전 설비 수주 5조원, 2030년까지 원전 수출 10기' 목표에 가까워졌다는 얘기다.

코스민 기짜 SNN 사장은 "한국 기업은 기자재 기술 등에서 글로벌한 수준인 데다 기간 내 완공 능력과 가격도 장점이다. 한수원이 신규 원전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며, 한국과 더 적극적인 관계를 맺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번 계약으로 중수로 강국인 캐나다보다 기술력 등에서 앞선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왼쪽 두번째) 사장과 코스민 기짜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 사장(왼쪽 세번째)이 27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루마니아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 건설 계약식에서 계약서에 서명 후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맨 왼쪽), 체자르 마놀레 아르메아누 주한루마니아대사와 함께 기념촬영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왼쪽 두번째) 사장과 코스민 기짜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 사장(왼쪽 세번째)이 27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루마니아 원전 삼중수소제거설비 건설 계약식에서 계약서에 서명 후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맨 왼쪽), 체자르 마놀레 아르메아누 주한루마니아대사와 함께 기념촬영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당시 탈원전에 따른 일감 부족으로 고사 직전에 몰렸던 국내 원전 생태계도 활력을 찾을 전망이다. 국내에선 신한울 3·4호기 부지정지공사가 시작된 한편, 고부가 일감으로 꼽히는 삼중수소제거설비도 추가 공급되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8월 국내 기자재 공급사를 상대로 루마니아 사업 설명회를 열기로 했다. 기자재 발주는 약 1000억원(24종) 규모로 추산되는데, 내년 상반기까지 발주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폐기물 처리 계통이나 질소 저장 탱크 등 보조기기 관련 업체들의 일감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이번 사업에서 실적을 보여주고 신뢰를 쌓게 되면 다른 루마니아 사업으로의 확장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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