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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먼저 살려야" "양육 포기 부추겨"…보호출산제 거센 공방

중앙일보

입력

잠을 자고 있는 신생아. [사진 픽사베이]

잠을 자고 있는 신생아. [사진 픽사베이]

지난 8년간 2000명이 넘는 출생 미신고 영유아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되면서 정부·여당이 ‘그림자 아동’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의료기관이 병원에서 태어난 아동의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출생통보제’와 더불어 익명으로 아이를 출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보호출산제’를 패키지로 법제화하겠다는 계획인데 보호출산제의 경우 찬반 논란이 거세 단기간에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7일 복지위 법안소위서 '보호출산제' 논의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보호출산제 관련 법안은 총 2건이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과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2020년과 2021년에 발의했다. 복지위는 오는 27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관련 법안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정부는 출생통보제가 시행될 경우 출산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임신부의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것을 우려, 보완적 성격으로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법안소위에서부터 논의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미애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이 발의된 2020년부터 3년 넘게 잠잠하다가 이제 막 떠오른 법안이다. 반대 측 주장도 명확해 의견 일치를 쉽사리 볼 수 없을 것”이라고 26일 말했다.

친생 부모 신원 보호 vs 아동 알 권리

보호출산제를 둘러싼 쟁점 중 하나는 친생 부모 신원 보호와 아동의 알 권리가 충돌한다는 점이다. 국회에 계류 중인 두 법안은 자녀가 성년이 돼 친생 부모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자 하기 전까지 그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성년이 된 후에도 친생 부모의 신원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김미애 의원안에선 자녀가 친생 부모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자 할 때 친생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조오섭 의원안도 자녀가 친생 부모의 인적사항이 담긴 가족관계증명서 교부를 청구할 경우 친생 부모가 교부 금지를 신청할 수 있다.

때문에 법안 도입에 반대하는 측은 친생 부모에 대한 자녀의 알 권리를 박탈하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22개 아동단체·한부모단체·인권단체들로 구성된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친모의 정보를 숨기는 것은 아동의 뿌리를 알고 정체성을 가질 권리, 양육과 보호의 청구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전국입양가족연대는 “유기 아동의 발생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보호출산제 도입에 적극 찬성한다”고 반박했다.

양육 포기 늘어날 것 vs 아이 생명 우선

5월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베이비박스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5월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베이비박스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14년째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주사랑공동체의 이종락 목사는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주사랑공동체는 지금과 같은 유사한 상황이 지난 2012년에도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당시 출생신고가 된 아기만 입양할 수 있도록 입양특례법이 개정되자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미혼모 등이 베이비박스로 몰리면서 보호 아기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베이비박스로 들어온 아기는 2011년 35명, 2012년 79명이었다가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2013년 252명, 2014년 253명으로 급증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로 오지 않은 경우 극단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라며 “생명의 위기에 놓인 아기와 임산부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출산법이 하루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보호출산제가 법제화되면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혼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크기 때문에 양육 포기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며 “미혼모에 대한 지원책 등을 강화하고 이들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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