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쟁점' 다퉈볼만 하지만…정부 '엘리엇 취소소송' 고민,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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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배상금과 이자·법률비용 등 약 13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중재 결정에 대해 법무부가 이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낼지 고심 중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법무부 관계자는 26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지난 20일 결정에 대한 취소 소송 여부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론스타 국제투자분쟁 사건에서도 판정문 정정신청을 끌어내고 이의제기 검토를 맡았던 법무법인 피터앤킴과 미국 로펌 아놀드&포터도 법무부 자문단에 합류해 취소 소송의 실익과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엘리엇 사건을 두고 법무부가 장고를 거듭하는 것은 론스타 사건 때와 온도차가 있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 해결센터(ICSID) 중재재판부는 지난해 8월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매각할 때 정부가 승인을 지연해 손해를 입었다”는 론스타의 주장을 일부 인용해, 우리 정부에 약 293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당시 법무부는 즉각 “판정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엘리엇 중재판정에 대해선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면밀히 분석해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우선 론스타 사건과 달리 이번 건은 취소 신청 기한이 촉박하고, 영국 고등법원 판단을 받아야하는 절차적 차이가 법무부에 유리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론스타 사건은 120일 이내에 불복할 수 있었지만, 이번 엘리엇 사건은 28일 안에 취소 신청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신청 기한 촉박, 중재판정에 우호적인 영국 법원 '걸림돌'
또 사전에 정부와 엘리엇이 합의한대로, 취소 소송을 진행한다면 영국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데, 국제중재 판정에 대체로 우호적인 영국 법원의 특성도 부담이다. 정부는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을 놓고 이란 다야니 가문과 벌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패소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영국 고등법원에 냈지만 2019년 12월 패소했다.

중재판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을 엘리엇 논리대로 인용한 점도 걸림돌이다. 중재판정부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 기관이고, 정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했으며, 정부가 엘리엇에 대해 한·미FTA 상의 최소 기준 대우 의무를 위반했다는 엘리엇 주장을 인정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견은 기금운영본부 의결을 거친 개별 판단”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에 대한 유죄 판결과 사건 기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오현석 계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취소소송 인용률이 높지 않지만 중재판정부가 명백한 준거법을 잘못 적용하거나, 관할권을 오인한 ‘권한 초과 사유’가 그나마 많이 인정되는 경우”라며 “국민연금에 대한 압력 행사 부분보다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 기관인지 여부는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연 이자율이 5%로 높아 취소 신청을 할 경우 부담해야 할 이자와 소송 비용을 고려하면. 승소 가능성과 비교해 실익이 작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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