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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제보로 40억 환수 해놓고…"관련없다" 보상금 안 준 권익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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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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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가 공익신고자의 제보 덕분에 세금을 환수하고도 보상금을 제대로 주지 않아 재판에서 패소했다.

서울고법 행정6-1부(부장 황의동 위광하 홍성욱)는 근무하던 병원의 불법 운영 실태를 제보한 A씨가 권익위를 상대로 낸 보상급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했다.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14년 병원 내부 자료를 모아 권익위에 공익신고 했다. 병원장이 ‘대리 원장’을 내세워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이중으로 타냈고, 의약품 납품과정에서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후 건보공단은 40억원을 환수했고, 법원은 병원 측에 2755만원을 추징했다.

A씨는 2016년 권익위에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상금을 신청했다. 하지만 권익위는 건보공단 환수액 40억원은 보상금 산정 기준에서 뺀 채, 병원에 추징된 금액에 대한 보상금 871만원만 지급했다. 이에 A씨는 권익위 처분에 문제가 있다며 2021년 소송을 냈다. 권익위는 “A씨 신고 전에 이미 건보공단이 병원 측의 범죄 혐의를 포착하고 있었다”고 맞섰다.

보상금 신청하자 권익위 "원래 알고 있었다" 주장 

지난해 1심 재판부는 A씨 손을 들어줬다. 건보공단이 40억원을 환수할 수 있었던 건 A씨가 수사기관에 각종 영상이나 재무 자료를 제출한 덕이 크다는 것이다. 권익위는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도 같은 판결을 내렸다. 오히려 2심 재판부는 더 나아가 “건보공단은 병원의 편법 운영 사실 등을 의심하고 있었을 뿐 구체적으로 조사하지 못하다가, A씨 신고 후 진행된 경찰 수사 자료와 결과를 통보받고서야 환수 결정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또 공익신고와 환수 결정 사이 관련성 여부를 검토할 의무는 권익위에 있다고 봤다. “제3자인 권익위 입장에선 관련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권익위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재판부는 “권익위는 A씨의 신고를 받아 사건을 경찰에 이첩한 국무총리 소속 국가기관”이라며 “추후 수사결과를 보고받은 권익위가 보상금 지급 여부를 판단할 때는 신고와 환수 사이 인과관계를 따져볼 의무가 있다”고 봤다.

A씨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혈세 40억원 환수한 게 신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길래, 권익위라는 데는 원래 그런 곳인 줄 알았다”며 “신고 후 10년 가까이 지난 끝에 판결문에 권익위의 ‘의무’가 명시돼 서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A씨를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원곡 법률사무소)는 “공익신고자가 보상금 지급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때문에 공익신고를 한 것 자체를 후회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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