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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아살해 형량 왜 낮나 했더니…6.25때 만든 법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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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살해죄 감형 규정 폐지는) 영아의 생명 및 안전을 보통사람의 생명과 달리 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볼 때 적절한 입법적 조치로 보여진다” (2021년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법안 검토보고서)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출산한 아기를 살해한 혐의로 친모인 고모(30대)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포대기와 검은 비닐봉투에 담겨 냉장고에서 발견된 영아 시신을 수습해 수원의 한 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임시 안치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손성배 기자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출산한 아기를 살해한 혐의로 친모인 고모(30대)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포대기와 검은 비닐봉투에 담겨 냉장고에서 발견된 영아 시신을 수습해 수원의 한 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임시 안치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손성배 기자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의 친모에게 적용한 영아살해죄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국회 내부에서도 13년 동안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형법상 영아살해죄의 형량은 일반 살인죄보다 낮다. 일반 살인죄는 최소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지만, 영아살해죄의 형량은 하한선 없이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규정돼 있어 대부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영아살해죄는 “직계존속이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라고 규정돼 있어, 산모가 아닌 부친이나 조부모·외조부모까지도 낮은 형량을 적용받을 수 있다.

영아살해죄에 대한 이 같은 감형 규정은 1953년 형법 제정 때 도입됐고,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박장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6·25 전쟁 직후 극도의 곤궁 상태 등으로 양육하기 곤란했던 사회상을 반영하여 제정된 규정이 특별한 내용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며 “사회․경제적 여건과 상황, 국민의 인식 및 의식 등이 지금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의 모습. 뉴스1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의 모습. 뉴스1

이에 국회에서는 영아살해죄를 폐지하거나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18대 국회 이후 모두 5건 발의했다. 2010년 3월 홍정욱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형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2021년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개정안까지 5건의 법안은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를 삭제하거나 행위 주체를 ‘생모’로 한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이들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원회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5차례 제출된 국회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의 법안 검토보고서는 모두 “영아의 생명 역시 소중하다”는 취지로 법 개정을 촉구했다. 2010년 4월 보고서엔 “영아살해에 대한 감경이 생명 경시 풍조를 야기할 수 있다”며 “오히려 영아는 저항할 능력이 없고 더욱 보호되어야 할 소수 약자다”고 적시했다. 2018년 2월 보고서에도 “형의 차이를 둘 만큼 (영아살해의) 비난 가능성이 적다고 할 수 없다”며 “가볍게 처벌한다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될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7월 보고서에는 “프랑스와 독일도 형법 개정을 통해 영아살해죄를 폐지했고, 일본과 미국은 별도 규정이 없다”며 해외의 법 개정 사례를 제시했다. 이 보고서는 독일의 아동유기죄 가중처벌 조항을 거론하며 “일부 국가는 아동에 대해 유기행위를 한 경우를 일반 유기죄보다 더 중하게 처벌한다”라고도 적었다. 그러나 이 법안 역시 2년 가까이 방치된 채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최근 미출생신고 아동 가운데 3명이 숨진 사실이 드러나자, 여야는 뒤늦게 입을 모아 “신속하게 법을 정비하겠다”고 외쳤다. 현재 법 개정 논의는 출생통보제나 보호출산제 등 아동보호 법안에 국한돼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어린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범행은 상당히 죄질이 나쁘기 때문에 가중 처벌할 수 있는 형법 개정안도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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