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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 차 대고 깍두기 인사...'신20세기파' 두목의 결혼식 풍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5일 오후 4시30분쯤 신20세기파 두목 A씨 결혼식이 열린 부산 중구 한 호텔 출입구.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떠나가는 차량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25일 오후 4시30분쯤 신20세기파 두목 A씨 결혼식이 열린 부산 중구 한 호텔 출입구.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떠나가는 차량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민주 기자

25일 오후 4시20분쯤 부산 중구 영주동 한 호텔. 입구에 선 건장한 체격의 남성들이 주요 결혼식 하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차를 넘겨받아 대신 주차해주고 있었다. 차주가 차를 맡길 땐 시민 불편은 아랑곳없이 호텔 앞 차도, 심지어 횡단보도 등에 세우기도 했다. 시커먼 대형세단이 오면, 삼삼오오 도열해 있던 남성들이 상체를 90도로 숙이는 조직폭력배식 인사인 일명 ‘깍두기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 인사는 여러 곳에서도 자주 목격됐다.

도로에 차 세우고 깍두기 인사 

이날 이 호텔 결혼식장에선 ‘신20세기파’ 두목 A씨(50대)의 결혼식이 열렸다. 신20세기파는 ‘칠성파’와 함께 부산 양대 폭력조직으로 꼽힌다. 이들 조직은 영화 ‘친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날 결혼식 피로연 인원으론 250명 정도를 예약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결혼식장엔 인원이 그 이상으로 보였다. 신20세기파를 포함한 부산지역 폭력배와 이들의 추종세력, 타 지역 조직의 두목ㆍ원로급 조직원들이 대거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부산 경찰은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부산경찰청과 중구 관할 중부경찰서 강력ㆍ조폭전담팀 등 형사 30여명과 첩보 분석팀이 호텔 안팎에 투입됐다. 이날 경찰이 특히 신경 쓴 건 다른 조직과의 충돌 가능성이다.

2021년 5월 15일 부산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신20세기파 조직원 8명이 칠성파 조직원 2명을 폭행했다. 사진 부산경찰청

2021년 5월 15일 부산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신20세기파 조직원 8명이 칠성파 조직원 2명을 폭행했다. 사진 부산경찰청

5년 전 광주선 ‘결혼식 보복 원정’  

5년 전 비슷한 상황을 맞았던 광주에서 ‘일’이 터졌다. 결혼식 전날 술자리에서 만취한 채 행패를 부리던 인천 조직원이 광주 조직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면서다. 이후 인천 조직원이 소속된 OO파는 서울과 경기 등지에서 활동하던 조직 소속 폭력배 40명을 광주로 불러들였고, 전날 일을 사과하러 찾아온 광주 폭력배들을 붙잡아 가두고 협박한 일이 있었다.

25일 오후 4시20분쯤 신20세기파 두목 A씨 결혼식이 열린 부산 중구 한 호텔에서 조직원으로 보이는 하객들이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김민주 기자

25일 오후 4시20분쯤 신20세기파 두목 A씨 결혼식이 열린 부산 중구 한 호텔에서 조직원으로 보이는 하객들이 인사를 주고받고 있다. 김민주 기자

"사고 안 난 두목 결혼식, 세월 변했다"

부산경찰청은 A씨 결혼식에서 특별한 위법 행위는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오후 5시 본식이 임박하자 신랑ㆍ신부의 가족 등을 제외한 ‘조직원’ 하객 대부분은 호텔을 빠져나갔다. 호텔 출입구 및 로비와는 달리 식장 내부에선 일반적인 호텔 결혼식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와 관련, 현 정권 들어 위법 행위에 대한 엄정 대처가 일관되게 이어진 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에 대해서도 삼엄한 단속이 이어지는 상황이어서 진짜 ‘조폭’의 두목 결혼식은 조용히 치러졌단 의미다.

윤승영 경찰청 수사국장이 3월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단속' 중간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동안 '건설폭력' 특별단속을 시행한 결과, 총 581건에 대해 2863명을 단속해 2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뉴스1

윤승영 경찰청 수사국장이 3월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단속' 중간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 동안 '건설폭력' 특별단속을 시행한 결과, 총 581건에 대해 2863명을 단속해 2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뉴스1

오랜 기간 폭력조직 관리ㆍ검거 업무를 맡아온 경찰의 한 간부는 “최근 몇 년 새 주요 조직원들이 구속되는 등 신20세기파의 세력이 꺾인 영향도 크다”고 짚었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부산통’이라 불리며 신20세기파에 소속됐던 B씨(30대)는 후배 조직원 폭행과 여성 강제추행 등으로 지난해 말 수감됐다.

앞서 지난해 10월엔 부산 번화가인 서면과 대학병원 장례식장 등지에서 상대조직 칠성파와 벌인 패싸움 여파로 신20세기파 차기 주자로 꼽히던 행동 대장 격 인물 2명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패싸움으로 신20세기파와 칠성파 조직원 66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간부는 “신20세기파가 운영하던 성매매 업소와 홀덤펍(불법 카드 도박을 할 수 있는 펍) 등 7곳이 경찰에 적발됐고, 두목인 A씨 사업도 어려운 거로 안다. (결혼식이라고) 세를 과시하거나 경거망동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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