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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미아 JAC 신호 오기를, 기우제 지내는 마음...또 도전할 것"

중앙일보

입력

김용일 져스텍 대표가 큐브위성 JAC를 소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용일 져스텍 대표가 큐브위성 JAC를 소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JAC가 우주에 간지 한 달이 됐습니다. 지금은 배터리가 방전됐을 거예요. 태양전지가 충전되면 언젠가 다시 작동하지 않을까, 신호를 보내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지요. 희망 고문을 당하고 있습니다.”

누리호 사출 ‘JAC 아버지’ 김용일 져스텍 대표

큐브위성 JAC를 개발한 김용일 져스텍 대표는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25일로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II) 3차 발사가 성공한지 한 달이 됐다. 누리호에 실렸던 위성 8기 중 6기는 순항 중이다.

다만 도요샛 셋째 ‘다솔’은 누리호에서 내리지 못했고, 져스텍의 JAC은 우주에 내렸지만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JAC은 이번에 탑재된 위성 중 가장 가벼운 3.2㎏으로, 해상도 4m급의 우주용 광학 관측 카메라를 통해 우주 영상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지난 21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져스텍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지금 JAC는 우주 궤도를 뱅뱅 돌고 있을 것이다. 송수신이 안 되는 이유를 아직 모르는 상황”이라며 “직원들이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비 올 때까지 기우제를 기다리는 것처럼 (JAC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큐브위성은 정상적으로 궤도에 투입되더라도 수 주간 교신이 되지 않다가 뒤늦게 신호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위성용 모터 만들며 우주산업과 인연

이번에 큐브위성을 처음 제작한 져스텍은 정밀모터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회사다. 김 대표가 우주산업과 인연을 맺은 건 2018년, 위성에 탑재할 자세제어 모터 ‘리액션 휠’의 제작을 의뢰받으면서다. 지난해엔 차세대소형위성 1호에 제어 모멘트 자이로스코프(CMG)를 제작했고, 이번에 쏘아 올린 주탑재위성 NEXTSAT-2의 메인 구동기도 제작했다. 위성이 자세 제어를 정밀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촬영 등 임무 수행을 돕는다.

2014년부터는 정밀모터 기술을 바탕으로 천체관측용 망원경을 제작하는 등 광학기기 산업에도 진출했다. 김 대표는 “별을 관측하려면 6시간 이상 별을 따라 망원경이 정밀하게 움직이며 별빛을 모아야 한다”며 “한국천문연구원의 천체 망원경을 수리하며 광학기기까지 사업을 넓혔다”고 말했다.

“천문연에서 ‘천체 망원경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모터를 고쳐달라고 찾아왔어요. 당시 관계자가 만원권 지폐를 보여주면서 설득했습니다. 조선 시대 천체 측정기인 ‘혼천의’가 원래 중국 기술이고, 그 옆에 그려진 국내 최대 규모인 보현산 천문대의 직경 1.8m 망원경은 본체가 프랑스 기술이라고요. 프랑스 측에서 수리비를 너무 많이 불러 고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제가 할게요’ 그렇게 망원경 개발을 시작했죠.”

당초 프랑스에서 오기로 했던 대형 렌즈가 도착하지 않았다. 져스텍은 이후 정밀모터 끝에 숫돌과 칼을 붙여 망원경용 렌즈를 직접 깎아내 직경 1m 크기의 천체 관측용 망원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해외 기술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1만원권 지폐 뒷면에는 조선시대 천체측정기인 혼천의(왼쪽)와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점선)이 그려져 있다. 중앙포토

1만원권 지폐 뒷면에는 조선시대 천체측정기인 혼천의(왼쪽)와 보현산천문대 망원경(점선)이 그려져 있다. 중앙포토

김 대표가 제작중인 천체관측용 망원경. 평택=고석현 기자

김 대표가 제작중인 천체관측용 망원경. 평택=고석현 기자

모터기술·광학기술 집약한 ‘우주의 꿈’

‘지구에서 우주를 올려다보는 망원경을 만들었으니, 우주로 보내면 내려다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만들어낸 게 이번에 쏘아 올린 큐브위성 JAC다. 정밀모터 기술과 광학기술이 모두 집약된 결과다.

져스텍은 지난해 큐브위성 개발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일반적으로 큐브위성 개발에 3~4년이 걸린다. 위성 부품을 수입하는 데만 1년~1년 반이 걸린다고 해서 직접 부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지난해 11월쯤 ‘누리호 3차 발사에 위성을 실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납품 기한이 지난 4월까지였는데, 일정이 굉장히 촉박했다”고 돌이켰다. 김 대표와 연구진 다섯 명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냈다.

경기 평택 져스텍 본사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큐브위성 JAC를 개발하고 있다. 평택=고석현 기자

경기 평택 져스텍 본사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큐브위성 JAC를 개발하고 있다. 평택=고석현 기자

처음 발사한 JAC는 현재 ‘우주 미아’ 신세가 됐지만, 김 대표는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올 하반기 발사할 수 있도록 미국의 민간 우주업체와 발사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그는 “다음 발사 땐 위성과 통신이 더 잘 될 수 있도록 지상에도 교신용 안테나를 3~4곳 더 확보했다”며 “큐브위성의 내구성을 높이고 위성 궤도를 더 잘 계산해 우주로 쏘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기계공학 학·석사를 마친 김 대표는 1985년 미국 카네기멜론대로 국비 유학을 떠났다. 당시 미국에서도 로봇은 미개척 분야였다. 그는 “지금의 인공지능(AI)처럼 그때는 모든 걸 로봇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새로운 분야이다 보니 로봇을 전공하면 장학금을 준다고 해 그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당시 인공관절 등 우주형 로봇을 주로 연구했다. 함께 공부했던 동기들은 로봇 공학 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 창립 멤버들이다.

우주산업, 뇌 정밀촬영 기술 등 도전 계속

김 대표는 박사학위 취득 뒤 IBM을 거쳐 국비 연수 조건 이행을 위해 1990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부임했다. 1999년 벤처 붐이 일자 정부는 출연연구기관 연구원에게 창업을 권장했고, 연구원 중 막내였던 김 대표는 ‘먼저 회사를 세팅하라’는 선배 연구원들의 미션을 받아 창업 세계에 뛰어든다.

그는 “로봇 회사를 창업했는데, 당시 국내엔 로봇 제작에 필요한 정밀모터가 없었다. TV도 냉장고도 손으로 만드는 노동집약적 산업만 있었다”며 “점차 공장이 자동화하며 정밀모터 수요가 늘었고 덕분에 사세가 커졌다”고 말했다.

현재 김 대표는 정밀모터 회사인 져스텍, 광학기기 회사인 오스텍, 위성 제조회사인 코스모웍스를 이끌고 있다. 전체 직원은 100여 명에 달한다. 이들 회사의 정년은 70세이다. 그는 “몇십년간 믿고 따라준 회사 직원들을 60세에 은퇴시키긴 너무 아까웠다”면서도 “업계 최고 대우를 할테니 우주 산업을 이끌어갈 우수한 분들을 더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주산업 외에도 정밀모터 기술을 기반으로 뇌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등 신 기술 개발에 지속해 도전하고 있다. PET가 더 정밀하게 움직일수록 뇌출혈 등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영 국가대표 선수였던 박태환을 존경해요. 첫 올림픽 데뷔전(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스타트 실수로 실격됐지만, 그다음(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엔 금메달을 땄어요. 실수했던 스타트 연습만 계속했다고 해요. 제가 할 수 있다고 얘기했는데, 증명을 못 하면 사람이 바보가 되는 거잖아요. 큐브위성을 한 번 만들어봤으니 또 만드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잘 준비해서 다음 발사는 꼭 성공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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