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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만의 복귀전 승리' 42세 이원희 "다음엔 꼭 한판승, 올림픽이 꿈"

중앙일보

입력

17년 만의 국제대회 복귀전에서 승리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오른쪽). 사진 IJF

17년 만의 국제대회 복귀전에서 승리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오른쪽). 사진 IJF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42·용인대 교수)가 현역 복귀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원희는 24일 몽골 울란바토르 그랜드슬램 남자 73㎏ 1라운드에서 알라바초우 루슬란(23·벨라루스)을 1분 44초 만에 반칙승으로 꺾었다. 루슬란은 금지 기술인 '다이빙 반칙(매트에 머리를 박고 경기하는 동작)'을 취해 실격 당했다. 이로써 이원희는 2006년 이후 17년 만에 국제대회에서 승리하는 기쁨을 맛봤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이 그가 참가한 마지막 국제무대다. 공식 경기에 나선 건 2008년 5월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이후 15년 만이다.

1라운드에서 허벅다리걸기를 시도하는 이원희(아래). 사진 IJF

1라운드에서 허벅다리걸기를 시도하는 이원희(아래). 사진 IJF

1981년생 이원희는 지난해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이 목표다. 나의 도전이 한국 유도에 자극을 주고, 국민에겐 희망의 메시지가 되길 바란다. 마흔 넘은 내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평범한 아저씨들도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며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이때부터 그는 시간을 쪼개 틈틈이 훈련하며 준비했다. 이번 대회엔 국가대표가 아닌 자비를 들여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이날 이원희와 함께 73㎏급에 출전한 현 국가대표 1진 강헌철(세계 32위)은 1회전에서 탈락했다.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기존 에이스 안창림이 2021년 은퇴하면서 73㎏급은 한국의 취약 체급이 됐다.

이원희는 2라운드에서 베크루즈 호다조다(타지키스탄)와 치열한 승부를 펼치다가 정규시간 35초를 남기고 안뒤축걸기 절반을 내줘 아쉽게 패했다. 호자조다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81kg급 은메달리스트다. 이원희는 1라운드에서 전성기에 버금갈 만큼 날카로운 허벅다리 후리기를 선보이며 관중과 유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루슬란이 범한 반칙도 그가 공격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세계 유도계는 이원희의 복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유도 관계자들은 2000년대 초반 세계 유도를 호령한 수퍼스타의 복귀를 직관하기 위해 치열한 '관중석 1열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국제유도연맹(IJF)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빗당겨치기 고수인 유도계 전설 이원희가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웃는 이원희. 중앙포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활짝 웃는 이원희. 중앙포토

이원희는 2003년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어 한국 유도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모두 우승)을 달성한 레전드다. 2003년엔 국제 대회 48연승(8연속 우승)이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이중 무려 44경기가 한판승이었다. 무적이었던 그에겐 '한판승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주특기인 빗당겨치기를 비롯해 배대뒤치기, 업어치기 등 한국 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기술이 다양했던 이원희는 웬만해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유도 종주국 일본 선수들에게도 경계 대상 0순위였다.

이원희는 2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2006년 아시안게임 이후 발목 인대 수술을 받으면서 사실상 매트를 떠났다. 17년 만에 국제대회에 나와서 이겼는데도 아쉬움이 더 크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 달 반 정도 준비했는데, 훈련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오랜만에 실전 경험을 쌓은 것에 의미를 둔다"고 덧붙였다.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확정하고 기뻐하는 이원희(오른쪽). 중앙포토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확정하고 기뻐하는 이원희(오른쪽). 중앙포토

20대 시절 같지 않은 신체 회복 속도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그는 "평소 체중이 82~83㎏이라서 대회를 앞두고 10㎏을 감량했다. 대회 직전엔 아예 굶으며 5~6㎏을 뺐는데, 계체량 후 음식을 먹어도 기대만큼 체중이 늘지 않았다. 결국 최상의 몸 상태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바람에 상대와 힘 차이를 극복 못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경기 운영도 아쉬웠다고 평가했다. 이원희는 "예전과 경기 룰이 바뀐 부분이 많아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첫판에선 공격적으로 해 상대 반칙을 유도했는데, 2라운드에선 상대가 작정하고 수비적으로 나왔는데 제대로 대응 못 하고 불필요하게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긴장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물론 수확도 있었다. 그는 "미흡한 부분만 보완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파리올림픽 출전 의지는 변함없다"면서 "다음 대회에선 두 판 이상 이기는 것이 목표다. 전매 특허인 시원한 한판승도 선물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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