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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광구' 정치판 싸움에 등장…38년간 잊혀진 그곳이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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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광구 시추선의 모습. 중앙포토

제7광구 시추선의 모습. 중앙포토

2011년 8월 개봉한 영화 ‘7광구’는 제주도 남단 대륙붕 7광구의 망망대해에 떠있는 석유 시추선에서 괴물을 만난 대원들이 사투를 벌이는 SF 영화다. 배우 하지원과 안성기의 출연으로 224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지만 개연성 부족한 이야기 전개가 옥의 티로 남았다.

영화의 배경이 된 7광구가 개봉 12년 만인 최근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1일 양기대 의원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석유 자원을 공동 개발하기로 맺었던 한·일 대륙붕 협정 종료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며 “미래 세대에게 빚이 되지 않게, 무능한 정부로 기록되지 않게,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한·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7광구 문제를 공식 의제로 올렸어야 했다”며 “7광구의 7자도 나오지 않은, 굴욕적으로 퍼주기만 한 정상회담이었다”고 비판했다.

도대체 7광구가 어떤 상태이길래 이런 걸까. 7광구는 제주도 남쪽으로 200㎞ 떨어진 일본 열도 서쪽의 제주해분(濟州海盆) 일대에 설정한 약 8만2000㎢의 자원 탐사 구역을 뜻한다. 규모만 따지면 남한 면적의 80%에 달하는 바다 밑 우리 땅이다. 1970년 박정희 정부가 한국 영토로 선포한 이곳은 석유와 가스가 대량으로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정희 정부의 선포 이후 일본이 공동 개발을 제안해왔고, 1978년 7광구를 양국이 공동 개발한다는 조약을 맺었다. 이후 양국은 시범적으로 7개의 시추공을 뚫어 석유와 가스를 일부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1986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 중단을 선언하고 철수해버렸다. 그런 뒤 현재까지 38년간 시추와 탐사가 중단된 ‘잊혀진 곳’이다.

문제는 한·일 양국이 ‘탐사와 시추는 반드시 양국이 공동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협정을 맺을 당시 유효기간을 50년으로 설정했고, 그게 2028년 6월이다. 협정 종료 3년 전인 2025년 6월부터 한쪽이라도 협정 종료를 선언하면 연장 없이 종료된다. 정민정 국회 입법조사관은 “이 사안은 대일 외교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며 “중국의 자원개발 라인도 북진하고 있어 사전에 억지하거나 사후 대응할 수 있도록 한·일이 협의해 공동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최근 “뒷짐 지고 있다가는 역사에 큰 누를 끼치는 사안”(5월 11일, 이용선 의원)이라거나 “유독 일본 앞에서 작아지는 윤석열 정부를 보면 7광구 문제에서 국익을 지켜낼지 우려된다”(4월 7일, 이재정 의원)는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졌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졌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7년에서 2021년까지 국회 상임위에서 7광구 관련 질의를 단 1차례도 하지 않았다. 2021년 10일 국정감사에서 몇 차례 간략히 진행 상황을 물었을 뿐이다. 여권에서 “자신들이 여당일 땐 느긋하더니, 윤석열 정부를 까기 위해선 잊힌 소재도 끌어온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2020년에 한국석유공사를 지정해 개발을 추진하도록 하고, 일본 정부에 공동개발을 요청하는 등 노력을 지속해왔다”며 “그에 비해 윤석열 정부는 아무 것도 안 하는 상태”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7광구 이슈를 통해 ‘대일 무능·굴욕 외교’ 프레임을 강화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 때는 7광구, 후쿠시마 오염수 등의 이슈가 시간이 많이 남은 상태라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라며 “무능한 외교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임박한 문제들로 명분을 쌓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구역 그래픽 이미지. 양유정 기자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구역 그래픽 이미지. 양유정 기자

여야가 남 탓을 하기 전에 하루 빨리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과거 여야는 “일본의 일방적 중단 이후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 있는데, 국익을 위해 자원외교를 해야 한다”(2013년 박주선 민주통합당 의원)거나 “결국 경제적 측면에서 필요한 지역이니 진지하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2015년 이재오 당시 새누리당 의원)며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2011년 한나라당 의원 시절 국회에서 정책토론회를 열고 “해양 영토는 기회의 대상이기에 외교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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