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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없는 지문, 이젠 수능 문제로 안 나오나요? [팩트체크]

중앙일보

입력

19일 오후 서울 한 서점에 EBS의 2024학년도 수능 연계교재가 진열되어 있다. 뉴스1

19일 오후 서울 한 서점에 EBS의 2024학년도 수능 연계교재가 진열되어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교과과정(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 문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한 후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혼동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메가스터디교육 소속 역사 강사인 이다지 씨는 SNS에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게 천차만별인데 ‘학교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 수능을 칠 수 있게 하라’는 메시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달달 외우라고 시키는 꼴”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교과서에서만 수능 문제가 나온다”는 주장을 팩트체크 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다르다?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자료 교육부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자료 교육부

우선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과 교육 목표, 성취 기준 등을 구체화한 계획이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에 명시된 교육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콘텐트를 담는다. 국어 과목이라면 문학 작품, 수학 과목은 이론과 이를 활용한 문제를 싣는 식이다.

단순히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지문을 출제했다고 해서 교육과정을 위반한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교육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현재 초중고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과서의 기준이 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국어과 독서의 교육 목표는 ‘독서 활동의 본질과 원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한다’, ‘다양한 주제, 유형, 분야의 글을 적절한 방법으로 읽는 능력을 기른다’, ‘목적에 따라 가치 있는 글을 스스로 찾아 즐겨 읽는 태도를 기른다’이다. 성취기준으로도 인문·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과학·기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이해를 요구한다.

교육 목표를 따랐다고 해도 교육과정 내에서 적절한 출제였는지는 살펴봐야 한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수능마다 교육과정 근거를 공개하고 있다. 고난도로 꼽히는 2020학년도 수능 국어 비문학 40번 문항에 대해선 교육과정 근거로 ‘글의 화제나 주제, 필자의 관점 등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발견한다’고 설명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2일 “수능에서도 비문학 지문을 낼 수 있다”면서도 “대학 전공 수준의 문항들이 나온 사례가 있다. 이것이 킬러 문항이고 학원에서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풀기 힘든 문제들”이라고 말했다.

수학은 국어보다 교육과정의 경계가 분명하지만, 문제 출제 방식에 따라 교육과정을 넘어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장은 “수능의 킬러 문항은 여러 가지 다른 개념을 혼합해 출제돼 교육과정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교과서에만 수능 출제 어렵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교육 경쟁력 제고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만약 교과서를 중심으로 출제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현행 검정교과서 체제는 민간 출판사가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교과서를 만들면 교육부가 이를 허가해주는 제도다.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에 따르면 현재 교육부 검정도서로 지정된 교과서는 국어 12종, 수학 9종, 영어 11종이다. “교과서에서만 내라는 건 검정 체제를 모르고 하는 말(현직 국어 교사 A씨)”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과서에서만 문제를 내는 게 수능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다. 송기창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교육과정 내에서만 내라는 것과 학교에서 배운 것만 내라는 다른 얘기”라며 “수학능력시험은 응용하는 문제 단순히 배운 것을 확인하는 학력평가가 아니라 응용하는 능력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문을 교과서 내에서 출제하라고 하면 내면 수능이 아니라 암기시험이다”라며 “어떤 교과서에서 나온 지문을 써야 하는지는 누가 정하나”라고 반문했다.

당정은 26일 교육과정을 위반한 킬러 문항의 사례를 공개하기로 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공정한 수능을 위해 공교육 교과과정 내 출제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킬러 문항은 핀셋 제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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