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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포탈라 광장엔 마오 아닌 시진핑 대형 초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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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호 20면

내지화 바람 거센 티베트 르포

지난 16일 밤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 광장 야경. 시진핑 주석의 대형 초상이 광장 서쪽에 세워져 있다.

지난 16일 밤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 광장 야경. 시진핑 주석의 대형 초상이 광장 서쪽에 세워져 있다.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금단의 땅 티베트를 다녀왔다. 티베트 지역을 취재하려면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번에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과 시짱(西藏·티베트) 자치구 신문판공실이 베이징에 주재하는 중앙일보·교도·로이터 등 외신 특파원 12명에게 취재 승인을 내줬다.

티베트의 상징 포탈라 궁을 찾았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이 사는 산 포탈라카에서 유래했다. 티베트 최고의 성지다. 해발 3767m에 자리한 라싸 도심의 훙산(紅山)에 13층 건물 높이 117m, 동서 360m, 남북 270m로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자리한 궁전이다. 지난 1649년부터 1959년까지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겨울 궁전으로 사용됐다.

“이기심·자만심 없애려 엄지 접고 합장”

티베트 산난시 제2 가오중학 운동장에 “중화의 씨앗을 청소년 마음에 깊이 심자”는 구호가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티베트 산난시 제2 가오중학 운동장에 “중화의 씨앗을 청소년 마음에 깊이 심자”는 구호가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흰색 칠을 한 백궁(白宮)에 들어서면 위대한 달라이 라마 5세로 불리는 롭상가초(1617~1682)의 손바닥 인장이 보인다. 손금의 모양이 연꽃을 닮았다. 연화장(蓮花掌)으로 불리는 신비로운 인장이다. 지난 1956년 라싸를 찾은 중국의 천이(陳毅) 부총리가 1959년 인도로 망명한 달라이 라마 14세 텐진가초(87)와 만났던 방을 포함해 22개 전각을 공개 중이다. 궁 안은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목재와 석재, 흙으로만 지은 궁전은 숱한 지진도 견뎠다 한다.

전통 시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몽골·만주를 지배하는 중국의 외곽을 아우르던 영적인 지도자였다. 포탈라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유해를 안치한 영탑(靈塔)과 불상, 불경 등이 보관되어 있다. 생활 공간인 백궁과 종교의식을 치르던 홍궁(紅宮)이 하루 5000명 관광객을 맞는다. 14세기 노란 모자를 쓴 개혁파 불교 교단 겔룩파를 창시한 총카파(1357~1419) 불상 앞에 티베트 참배객은 오체투지(五體投地) 절에 여념이 없었다.

“두 엄지손가락을 접어 손바닥 안으로 향하게 합장합니다. 이기심과 자만심을 없애는 겁니다. 합장한 손은 머리와 입, 가슴 순서로 모은 뒤 절을 합니다.” 티베트 해설사의 티베트식 오체투지 설명이 솔깃했다.

머리는 몸, 입은 말, 가슴은 마음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죄를 지을 때 세 가지 잘못을 합니다. 사지로 남을 때리는 죄가 하나, 말로 남을 공격하는 죄, 마음으로 남을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죄입니다. 죄업을 씻기 위해서는 몸과 입과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이어 사지와 머리를 동시에 땅에 대는 식으로 절을 하며 자신을 낮춘다.

포탈라궁 앞의 광장은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을 닮았다. 광장 북쪽 중앙에 중국의 국기 오성홍기가 24시간 나부꼈다. 남쪽에는 2001년 세운 이른바 시짱 평화해방기념비가 천안문 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와 매칭을 이뤘다. 지난해 숨진 장쩌민(江澤民)의 서체다. 제막식에는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부주석이 참석했다.

티베트 산난시 제2 가오중학 교실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티베트 산난시 제2 가오중학 교실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신경진 특파원

천안문 성루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 초상이 포탈라 광장에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광장 서쪽에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대형 초상이 놓였다. 마오쩌둥 초상은 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후진타오·시진핑 사진과 함께 동쪽에 서있다. 시 주석과 다섯 지도자 사진 두 장은 티베트 거리 곳곳과 공공기관, 학교 교실마다 걸려있다. 2021년 8월 ‘해방’ 70주년 경축 문구가 아직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해방’이란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이듬해 중국 영토로 합병한 것을 말한다.

광장 동서로 세운 초상은 지난 2021년 7월 21~23일 시 주석의 집권 후 첫 티베트 방문을 계기로 세워졌다. 티베트 동부의 린즈(林芝) 공항에 착륙한 시 주석은 열차를 타고 라싸에 입성했다. 베이징을 잇는 4064㎞ 칭짱(靑藏)에 이어,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와 라싸를 잇는 1838㎞의 촨짱(川藏) 철도다. 청두~야안(雅安), 라싸~린즈 구간은 이미 개통했다. 험준한 야안~린즈 구간은 지난 2020년 11월 착공했으며 2030년 개통이 목표다.

티베트와 중국의 만남은 7세기로 올라간다. 티베트 33대 왕으로 고원을 통일한 송첸 캄포가 640년 사신을 당(唐)의 수도 장안에 보내면서다. 사신은 황금과 보석을 건네며 중국의 공주를 요구했다. 토번(吐藩) 티베트 제국은 중국 황제의 딸을 요청할 정도로 강성했다.

당 태종은 압력에 굴복했다. 문성(文成) 공주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민족과 화친을 위해 시집가는 ‘화번(和藩)공주’로 뽑힌 문성공주는 태종의 친딸은 아니었다. 장안 개원사(開元寺)에 있던 석가모니의 12세 등신불을 혼수로 가져왔다. 송첸 캄포는 라모체 사원을 지어 불상을 안치했다.

우한 축산기업이 대형 양계공장 세워

포탈라궁 동쪽으로 1.5㎞ 떨어진 조캉 사원에는 문성공주에 앞서 시집 온 브리쿠티 데비 네팔 공주가 혼수로 가져온 석가모니의 8세 등신불을 모셨다. 지금은 두 불상이 바뀌어 놓였다. 송첸 캄포 사후 중국 군대가 침입해 들어오자 불상을 부실 것을 우려해서다.

문성공주와 송첸 캄포의 이야기는 티베트인과 한족의 조화로운 관계로 재포장됐다. 800여명이 출연하는 대형 공연 ‘문성공주’으로 각색해 매일 밤 관광객을 유혹한다. “하늘 아래 먼 곳은 없으며, 사람 사이는 모두가 고향(天下没有遠方 人間都是故鄕)”이라며 티베트와 중국을 묶고 있다.

조캉 사원의 티베트 해설원의 설명은 결이 달랐다. 송첸 캄포를 티베트를 통일한 진시황에 비유했다. 사원의 송첸 캄포 오른쪽에 네팔 공주가 왼쪽에 문성 공주의 불상을 놓여 있었다. 티베트에서는 오른쪽이 왼쪽보다 존중의 의미라고 했다. 당시 중국을 압도했던 티베트의 역사에 자부심이 묻어 났다.

조캉 사원을 둘러싼 바코르 거리에는 불교 경전을 담은 휴대용 마니(중국어 이름은 轉經筒·전경통)를 돌리며 걷는 순례객이 많았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의 티베트어 “옴마니 파드메 훔”을 다들 읊조렸다. 마니는 글을 읽지 못하는 신도가 경전 통을 돌리면 경전을 읽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수행 도구다. 내세에 좋은 곳에 태어나길 바라는 윤회의 소망을 담았다. 조캉 사원과 바코르에 오체투지 순례객은 신들의 도시 라싸를 상징하고 있었다.

해발 4000m를 오르내리는 버스에서 흘러나오던 티베트 노래 ‘초몰랑마’가 귓전을 맴돌았다. 티베트어로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을 지닌 산봉우리다. 8848.86m, 세계 최고봉으로 에베레스트로 알려진 산이다. 중국어로는 주무랑마(珠穆朗瑪)다. 1865년 영국인 조지 에베레스트라는 지리학자의 이름을 땄다. 흰 눈이 쌓인 채 품을 벌린 산은 자신의 이름까지 잃었다.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명예교수는 “이름을 빼앗은 영국인들이라도 그 영봉의 성스러움까지 빼앗을 수야 있겠는가”라며 “가난함 속에서도 순박한 종교적 심성을 잃지 않는 티베트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황하에서 천산까지』,1999)

7일간 지켜본 티베트는 빠르게 중국 내지화되고 있었다. 인구 35만 명의 산난(山南)시에서 2004년 개교한 제2 가오중(高中)을 찾았다. 자매결연을 한 안후이(安徽)성으로부터 체육관 건물 등을 기증받았다고 한다. 운동장 뒤로 “사랑하는 중화의 씨앗을 모든 청소년의 마음속에 깊이 심자”는 구호가 선명했다.

우한(武漢)의 축산 기업 훙눙(宏農)이 2021년 시짱에 세운 대형 양계 공장도 찾았다. 하루 계란 50만 개를 생산하는 설비였다. 장훙린(張宏林) 시짱 훙눙 대표는 “설비를 확충해 연간 계란 3억 개를 생산해 티베트 전역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티베트 면적은 120만2800㎢, 한반도 22만㎢의 5.4배다. 인구는 2021년 말 366만 명이다. 왕쥔정(王君正) 시짱 당서기는 지난주 티베트 엑스포 포럼에서 “국가의 전략 자원을 저장할 기지 건설에 힘쓰겠다”며 “전 중국의 구리 40%, 리튬 30% 이상이 티베트에 매장되어 있다”고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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