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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킬러문항’ 넘어 진짜 교육 개혁 착수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45호 30면

80년 사교육 참여율 6%, 현재는 80% 육박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과외 부추겨

학원 때리기는 표피적…근원부터 고민해야

사교육을 없애거나 줄이는 방법은 과외 공부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교육·입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학원 수업이 성적을 올리거나 가고 싶은 대학에 합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면 사교육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진리는 원래 단순한데 행하기가 어렵다.

사교육이 자녀의 미래를 바꿀 수 있으면 부모는 지갑을 연다. 확신이 들지 않아도 대열에 합류한다. 다른 집 아이가 사교육 힘으로 내 아이를 앞질러 갈 수 있다는 두려움 앞에서 부모의 ‘자기 주도 학습’ 소신은 허물어진다.

시험이 쉬워지면 사교육이 줄까? 그럴 수 있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 등급제로 바뀌어 입시 성패에 차지하는 비중이 줄자 영어 사교육 시장 성장세가 꺾였다. 그런데 국가 사교육비 총액은 오히려 늘었다. 다른 과목이 대입을 좌우하게 됐고, 그쪽으로 시장이 부풀었다. 그렇다면 모든 수능 영역에 절대평가 등급제를 적용하면 사교육 수요가 감소할까? 수능의 변별 기능이 약화함에 따라 내신 성적, 학생부 특기 사항, 대학별 시험(논술·구술 등)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다. 사교육 규모가 줄어든다는 보장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대학이 제비뽑기로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는 한, 연습과 준비로 점수를 올릴 수 있는 무언가로 학생을 선발하는 한 사교육은 영속할 것이다.

역대 정부가 ‘비상조치’를 꺼냈다. 중학교 평준화, 고교 평준화, 과외 금지, 학원 수강료 규제, 학원 수업 밤 10시까지로 제한, 선행학습 금지 등이 동원됐다. 1980년 이른바 신군부가 전격적으로 실시한 과외 금지 말고는 획기적 변화를 일으킨 게 없다. 43년 전처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헌법재판소가 2000년에 사교육 제한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과외 망국론’이 비등했던 1980년 정부가 추산한 초·중·고생 사교육 참여율이 6%였다. 이 수치가 78%(2022년, 총액은 26조원)로 불어났다. 다양한 소질 계발을 위한 것도 있으나 입시 대비가 큰 몫을 차지한다. 사교육비 부담은 출산율 0.78 국가 소멸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진짜 망국병에 걸렸는데 수술을 하거나 치료제를 쓰지 않고 반창고와 진통제로 대응해 왔다. 수능이냐, 학생부 전형이냐 싸움으로 10년을 보냈다. 학생들이 학교에선 잠을 자고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게 일상화됐는데도 교육청과 학교에 위기의식이 없다. 인기 학원 강사처럼 치열하게 수업 방법을 고민하는 교사도 드물다.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킬러문항’ 제거 지시와 여권의 ‘사교육 카르텔 척결’ 움직임에 온 나라가 요동친다. 사교육 효과를 줄이도록 설계된 수능이 30년간 풍파를 겪으며 누더기가 됐고, 고난도 문항이 학원가의 자양분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문제 제기는 수능 난이도 논란을 넘어 총체적 입시 개혁을 지향해야 한다. 동시에 공교육 살리기, 대학 서열화 완화를 위한 실질적 방안도 필요하다.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가 인생을 좌우하는 나라에선 학원과 일타강사로 돈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안일한 학교·교사·교육청, 대학 간판이 실력을 보장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사교육 후원자인 셈이다. 문제를 한칼에 해결할 수 없다고 우리 과거가 말해준다. 몇몇 학원·강사·출제위원 때려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학교와 사회가 달라져야만 한다. 그 변화를 촉발할 신통한 방법을 찾는 것이 지금 정치권과 교육계가 할 일이다. 이것이 인구절벽 위에 선 나라를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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