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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아기 몸값 고작 수백만원"…'불법입양' 낳는 출생신고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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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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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냉장고 영아 사망 사건을 계기로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정부와 지자체가 아이의 출생 사실을 알 수 없는 현행 출생신고제도의 한계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2236명(2015~2022년생 기준)에 달하며 이 가운데 사망·불법 입양 사례가 다수 확인되면서 정부는 의료기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법제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출생 신고 없이 시설 입소 269명…“신고론 찾지 못해”

2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출생 신고 관련 사항을 규정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등록법)은 출생 신고 책임을 신고 의무자인 부모(혼인 중) 또는 모(혼인 외)에게 맡기고 있다. 출생 신고는 출생 후 한 달 이내에 해야 하는 게 원칙인데, 이를 어기면 5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경기도 A시청 가족관계등록팀 관계자는 “신고가 늦어진 사람들에게 과태료를 매기는 것이지 실제 태어났는데 신고하지 않은 사람을 따로 찾아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동사무소 주무관은 “출생 신고 안 한 사람을 연락해 과태료를 매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낼 수도 없고 신고 여부나 권한은 신고 의무자에게 있다”라고 말했다. 신고 의무자인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정부나 지자체가 아이가 태어난 사실을 알 수 없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출생 미등록 상태로 사회복지시설에 입소한 아동은 269명으로 조사됐다.

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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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신고제는 공무원이 신고서에 적힌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할 권한이 없어 허위신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는 “미국·영국·캐나다·독일은 부모가 직접 출생 신고를 하는 것과 별도로 아동이 출생한 의료기관에 출생 통지 의무를 부여해 신고 누락이나 허위 신고를 막고 있다”라며 “한국의 현행 출생 신고제는 사후적 대처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출생 신고가 제때 되지 않으면 아동이 학대 등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면서 범죄 연관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경찰 등 관련 기관은 설명한다. 지난 21일 수원 한 아파트 내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된 사건 외에도 지난 3월 친모 방치로 사망한 3개월 영아도 출생 신고가 없던 것으로 파악됐다. 2021년 1월 인천에서는 40대 어머니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채 기르던 8세 딸을 살해한 뒤 일주일간 시신을 집에 방치한 일도 있었다.

“아이 데려가세요” 온라인에서는 불법 입양 성행?

지난 21일 수원시 장안구의 한 공동주택 냉장고 안에서 생후 1일 만에 친모로부터 살해된 것으로 조사된 2018년 11월, 2019년 11월생 영아 시신이 발견됐다. 영아살해 혐의로 친모인 고모(30대)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과학수사대'라고 쓰인 경찰 승합차가 현장에 왔었다고 증언하는 주민의 모습. 손성배 기자

지난 21일 수원시 장안구의 한 공동주택 냉장고 안에서 생후 1일 만에 친모로부터 살해된 것으로 조사된 2018년 11월, 2019년 11월생 영아 시신이 발견됐다. 영아살해 혐의로 친모인 고모(30대)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과학수사대'라고 쓰인 경찰 승합차가 현장에 왔었다고 증언하는 주민의 모습. 손성배 기자

출생 미신고로 위기 아동에 대한 실태 파악이 어려워지는 사이 온라인에서는 불법 입양이 이뤄지고 있다. 경기 화성의 A(20)씨는 18세이던 지난 2021년 12월 서울 한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뒤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감사원 감사를 거쳐 현재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A씨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아이를 데려간다는 사람에게 넘겼다”라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 진술의 진위를 확인하는 한편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A씨의 과거 휴대전화 포렌식 등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온라인을 통한 불법 입양의 경우 아이의 행방을 찾기가 어렵다. 아이가 죽었는지, 혹은 부모가 아이를 죽였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A씨가 경찰에 밝힌 웹사이트를 23일 확인해보니 “29세 39주차 미혼모다.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임신 8개월째인데 애 아빠가 연락이 안 된다. 가족에게 임신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다. 방법을 알려달라” 등과 같은 글이 이달에도 다수 올라왔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관계자는 “출산기록이 남는 걸 두려워하는 미혼모들이 인터넷을 통한 (불법) 입양을 꾸준히 상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입양특례법은 법원 허가 없이 입양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3년간 신생아 4명을 불법 입양해온 30대 여성이 구속되기도 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도 아이 입양 관련 글이 심심치 않게 게시된다. 아이를 보내길 원하는 임신부들은 보통 출산·산후조리 비용 등을 포함해 수백만 원을 요구한다고 한다. 사실상 아이를 사고파는 거래가 이뤄진다. 원치않는 임신을 한 여성을 상담해온 사회복지사 이모씨는 “기관으로 이들을 연계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지만, 부담을 느끼는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는 때가 적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정부와 국회는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를 이른 시일 내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임시신생아번호(병원 출생 시 아기에게 발급되는 번호)와 출생신고 내역을 대조해 미출생 신고 아동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출생 신고제는 부모의 선한 의지에 국가가 기대고 있는 제도”라며 “의료기관에서 아이를 많이 낳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출생 통보제가 도입된다면 신고에서 누락되는 아이 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우려 등은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미애 의원실 관계자는 “추적조차 불가능한 아이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 기관 밖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 대한 보호장치 마련도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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