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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유미예요" 돌연 사라진 北유튜버, 알고보니 국정원 요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가정보원이 '평양에 사는 유미' 등 북한을 노골적으로 홍보해온 유튜브 영상을 국내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도록 조치했다. 일방적인 북한 체제 선전으로 인한 부작용뿐 아니라 최근 북한이 열을 올리는 해킹 공격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23일 평양에 산다는 '유미'가 나오던 'Olivia Natasha- YuMi Space DPRK daily' 채널이 차단된 모습. 유튜브 캡처.

23일 평양에 산다는 '유미'가 나오던 'Olivia Natasha- YuMi Space DPRK daily' 채널이 차단된 모습. 유튜브 캡처.

평양의 송아·유미 사라졌다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정원의 요청에 따라 '송아'(샐리 파크스), '유미'(올리비아 나타샤-유미 스페이스 DPRK 데일리), 'NEW DPRK' 등 북한 체제를 선전해온 유튜브 채널 3개의 접속 차단을 지난 5일 의결했다고 밝혔다. 현재 해당 채널에 접속하면 '동영상을 재생할 수 없음. 정부의 법적 신고로 인해 해당 국가 도메인에서 사용할 수 없는 콘텐트입니다'라는 안내 메시지가 뜬다.

국정원 측은 이날 "그동안 방심위에 북한 체제 선전 유튜브 계정에 대한 차단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고, 최근 방심위의 차단 결정에 따라 해당 유튜브 계정들이 차단 조치됐다"고 밝혔다. 이는 정보통신망법과 국가보안법에 따른 조치다.

다만 해당 채널들의 일부 영상의 경우 23일 오후 기준으로 정상 재생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방심위 측은 "유튜브 측에는 3개 채널의 모든 영상을 차단하도록 신고했지만 통신 상황 등에 따른 일시적인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3일 오후 차단 조치 후에도 '송아'가 나오는 유튜브 채널 'Sally Parks [송아 SongA Channel]' 중 일부 영상이 정상 재생되는 모습. 방심위 측은 "일시적인 기술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유튜브 캡처.

23일 오후 차단 조치 후에도 '송아'가 나오는 유튜브 채널 'Sally Parks [송아 SongA Channel]' 중 일부 영상이 정상 재생되는 모습. 방심위 측은 "일시적인 기술적 문제"라고 설명했다. 유튜브 캡처.

'꾸며진 삶'에 수십만 조회수

지난해부터 유튜브에는 평양 주민의 일상생활을 짧은 영상으로 소개하는 영상들이 우후죽순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평양에 사는 유미'라고 밝힌 여성 브이로거(V-logger)가 "변화하는 평양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영어로 소개한 뒤 유원지와 상점을 찾거나 헬스 PT(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내용 등이다. 유미만큼 잘 알려진 평양의 브이로거 '송아'도 유창한 영국식 영어로 "평양에 온다면 완전히 놀랄 것"이라며 워터파크나 키즈카페를 가는 영상을 올렸다.

이들 채널의 구독자는 실제 수만에 달했고, 게시된 영상의 조회수는 많게는 수십만회에 이르렀다. 영상이 다른 채널로도 그대로 전파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관련 댓글 중에는 북한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내용도 있었다. 한국 국민이 이런 영상을 단순히 시청하는 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상 공유 및 채널을 구독하거나 댓글을 다는 행위 등은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할 경우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도 있다.

지금은 차단된 유튜브 채널에서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전하는 브이로거 유미가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지금은 차단된 유튜브 채널에서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전하는 브이로거 유미가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무엇보다 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대다수 북한 주민의 실제 생활과는 딴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미와 송아의 모습은 평양에 거주하는 소수의 특권층이 누리는 '연출된 삶'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일반 주민은 당국이 통제하는 내부 인트라넷을 사용하기 때문에 유튜브에 자유롭게 접속조차 할 수 없고, 이동 및 거주의 자유가 제한돼 평양의 주요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코로나 19로 인한 국경 봉쇄,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막대한 비용 지출 등으로 북한 주민의 식량난은 이미 위험 수준이다. 영국 BBC는 지난 14일(현지시간) 평양과 북ㆍ중 국경 근처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을 비밀리에 인터뷰해 "식량이 부족해서 이웃이 굶어 죽었다"는 전언을 보도했다.

지금은 차단된 유튜브 채널에서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전하는 브이로거 유미가 평양 낙랑구역 통일거리에 위치한 운동센터에서 요가를 배우는 모습. 유튜브 캡처.

지금은 차단된 유튜브 채널에서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전하는 브이로거 유미가 평양 낙랑구역 통일거리에 위치한 운동센터에서 요가를 배우는 모습. 유튜브 캡처.

北 콘텐트에 해킹 위험도

국정원은 체제 선전을 목적으로 한 유튜브 채널을 앞으로도 모니터링해 필요할 경우 방심위에 차단 요청을 할 계획이다. 보안 전문가들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한 홍보를 강화하는 북한이 각종 선전용 콘텐트를 매개로 해킹을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국내 북한 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박수곤 ITㆍ시스템 보안 담당관은 이날 통화에서 "유튜브는 운영 주체가 구글(Google)이기 때문에 단순히 영상을 시청하는 것만으로 해킹을 시도하긴 어렵지만, '채널 설명'과 '댓글' 등을 통해 얼마든지 피싱 링크로의 유도를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 나아가 북한 선전 매체의 웹페이지의 경우 가상 화폐 채굴을 위한 스크립트가 삽입돼있거나 악성 코드를 심어 놓은 경우도 많아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 접속하더라도 해킹 공격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 체제 선전용 콘텐트를 차단하겠다는 정보 당국의 노력이 본격화하면서 현재 정부가 대선 공약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북한 신문·방송의 단계적 개방 정책도 다소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일부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열람할 수 있는 국내 장소를 늘리는 등 북한 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밝혔지만, 막상 북한 방송 개방 등은 국가보안법 저촉 소지 등으로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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