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하면 합격인데…" 공무원 기피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AI)·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가축 방역을 책임지는 수의직 공무원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업무는 과중한데 처우가 열악해 지자체마다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전북도는 23일 "올해 수의직 공무원 41명을 충원할 계획이었지만, 10분의 1인 4명을 채우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수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합격은 사실상 '따 놓은 당상'인데 지원을 꺼려서다.
전북도 동물위생시험소 수의직 채용 경쟁률은 2020년 0.72:1, 2021년 0.73:1, 2022년 0.15:1 등 모두 일대일 밑을 맴돌았다. 올해는 29명 모집에 2명이 지원해 역대 가장 낮은 0.07:1을 기록했다. 전북 지역 전체 수의직 공무원 결원율은 현재 약 33% 수준이다. 정읍·순창 등 일부 시·군엔 수의직 공무원이 아예 없다.
"7급 임용…업무 강도 센데 수입은 적어"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북도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수의직 공무원 97명을 모집했지만, 각각 3명, 5명, 5명 등 총 13명이 응시했다. 경북도 전체 가축방역관 적정 인원은 278명이다. 하지만 현재 절반가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의사가 공무원이 되길 꺼리는 배경엔 낮은 수입과 처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수의직 공무원 대부분이 7급 공무원으로 임용되는데 월급은 본봉·수당 등을 합쳐 약 330만원(3호봉 기준) 수준이다. 동물병원 개원의는 물론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공중방역수의사(3년 차 기준 356만원)보다도 월급이 적다.
5급으로 임용되는 의사 등 타 직렬보다 승진이 더딘 것도 이유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수의사들이 소·돼지·닭 등 산업 동물보다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 분야로 진출하는 일이 갈수록 늘다 보니 가축 전염병 방역 인력 구하기가 더 힘들다"는 시각도 있다.
반면 수의직 업무는 1년 내내 비상근무를 해야 할 정도로 과부하가 걸린 지 오래다. 현재 전북에서 가축방역관 1명이 담당하는 소·돼지 등 가축은 2만 두가 넘는다. 하루에 처리하는 위생·도축 검사는 전체 약 20만 건에 달한다.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전북에서만 지난해와 올해 수의직 공무원 12명이 스스로 짐을 쌌다. 한 현직 수의사는 "월급도 충분치 않은 데다 언제 전염병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 상태가 부담스럽다"며 "가축 방역에 국민 생명과 먹거리 안전이 달린 만큼 가축방역관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직급 상향, 수당 증액" 요구
그러나 현재까지 뾰족한 대책이 없어 지자체는 추가 채용에만 매달리고 있다. 수의사면 나이 제한 없이 지원할 수 있는 '임기제 공무원'을 뽑는 식이다. 경북도 동물위생시험소는 지역 수의과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있다.
지자체는 가축방역관 신규 채용 직급 상향(7급→6급), 특수업무수당 증액(월 25만원→월 60만원) 등을 요구해 왔다. 대한수의사회도 "수의직 공무원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인사혁신처는 지난 1월 가축방역관 등 공직 내 전문 분야 채용 규제를 완화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직무 특성과 채용 여건에 맞춰 공무원을 충원할 수 있도록 정부 부처 자율성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인사처 "채용 규제 완화"…행안부 "보조 맞출 것"
인사혁신처 인재정책과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장관이 자격증별 임용 직급·경력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는 '공무원임용시험령' 개정안 입법 예고를 마친 뒤 현재 국무조정실에서 심사 중"이라며 "다음 달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당 문제는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이번 조치는 국가직 공무원만 적용된다. 지자체 수의직 채용은 행정안전부 소관이다. 행정안전부는 "농림수산식품부·인사혁신처와 협의하면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행안부 지방인사제도과 관계자는 "지방직 수의사 임용 기관은 지자체로, 임용권자인 단체장이 인사 규칙으로 직급·처우 등을 정할 수 있다"며 "자치단체별 인사 규칙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어서 국가직 규정이 개정되면 거기에 보조를 맞춰 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