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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전 불사하는 'AI 인재 쟁탈전'...챗GPT도 난리 [팩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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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오픈AI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오픈AI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챗GPT 등장에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기술 투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AI 인재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부 IT 대기업들은 AI 인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근본적으로는 국내에 AI 전문 인력의 절대 규모가 적은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일 김광섭 카카오브레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AI 스타트업 ‘아이더엑스’를 창업했다고 알렸다. 그는 카카오가 한국어 특화 AI 언어모델로 개발 중인 ‘코GPT’와 이미지 생성 AI ‘칼로’ 사업을 이끈 책임자였다. 김광섭 CTO는 “스타트업에서 빠르게 움직여야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AI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이 창업 적기”라고 말했다. 그는 챗봇 기반 AI 서비스를 기획 중이다.

“AI 인재 빼가지마” 신경전도 

물밑 이직 움직임도 활발하다. 최근 네이버는 SK텔레콤에 ‘인력 빼가기’를 멈추라는 요청을 담은 내용증명을 보냈다. 지난 4월 퇴사한 정석근 전(前) 네이버 클로바 CIC(사내독립기업) 대표가 SK텔레콤 계열사로 이직후 네이버 임원들을 데려 가려는 정황을 포착했다며, 경고장을 날린 것. 네이버는 자체 AI 모델(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하며 국내에서 AI 인력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네이버 내부에선 챗GPT나 구글 바드 등 글로벌 빅테크의 AI 공세에 맞서기엔 AI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AI 인재 허브’로 떠오른 네이버는 인력 단속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텔레콤 대응에 따라 전직 금지 가처분 신청은 물론 민·형사상 소송도 제기할 예정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AI를 두고 촌각을 다투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핵심 인력을 유출해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SK텔레콤은 “네이버의 오해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2016년 알파고 쇼크 때 AI·빅데이터 인력 수요가 급증했지만, 항상 부족하다”며 “IT 업계에서 인력 쟁탈전은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할 일은 많고 A급 인재는 적은 지금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라 기업들이 훨씬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발표한 2022 인공지능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AI 기업들은 사업상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인력 부족’을 꼽았다. 2022년 기준 AI 분야에서 부족한 인력의 수는 784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전체에서 필요한 AI 인력 4만7022명 중 16.7%는 못 채우고 있다는 것. 실제 필요한 AI 인력이 6명이라도 5명밖에 구하지 못하는 셈.

오픈AI도 “인재 부족”…생성 AI 창업에만 돈 몰려

해외에도 AI 전문 인력들을 찾는 곳은 많다. 이 경쟁을 촉발한 오픈AI는 전 세계에서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직원들이 개인 트위터에 “챗GPT 팀을 모집합니다(We are hiring in the ChatGPT team!)”라는 구인 공고를 올릴 정도다. 현재 오픈AI는 수억명이 쓰는 서비스를 운영하면서도 직원 수는 400명 미만으로 작은 조직이다.

스타트업 오픈AI가 구글을 위협할 정도로 AI 기술 성과를 내자 이를 지켜본 빅테크 재직자들의 퇴사·창업도 이어지고 있다. 메타에서 AI를 연구했던 도위 키엘라, 아만프릿 싱이 올해 설립한 컨텍추얼AI는 시드 투자로 2000만달러(약 260억원)를 조달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벤처 투자 시장이 위축됐다고는 하지만 생성 AI 스타트업에만큼은 돈이 몰리고 있어 AI 인재들의 창업 여건은 좋은 편이다. 벤처투자 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생성 AI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금은 120억달러(약 15조5340억원)로, 지난해 전체 투자금(45억달러, 약 5조9000억원)을 이미 훌쩍 뛰어 넘었다.

전 세계가 AI 인재 쟁탈전에 돌입하면서 AI 전문 인재 수준이 향후 각국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정부도 AI 인력 육성 계획을 내놨다.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AI융합혁신대학원을 현재 15개에서 2025년까지 22개로 늘리고, 내년부터 시행하는 초거대 AI 고급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2027년까지 SW·AI 고급 인력 20만명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문가들은 더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병탁 서울대 AI연구원장(컴퓨터공학부 교수)은 “AI 분야에 인력이 흘러넘쳐야 AI 인재가 바이오·반도체·제조업 등 특화 분야로 유입될 것”이라며 “특단의 조치, 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