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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일체형 폰 안돼”…점점 높아지는 유럽 ‘녹색장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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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신(新)배터리법 등을 제정하면서 ‘녹색 장벽’을 높게 두르고 있다. 명분은 ‘친환경 확산’인데, 공급망 이슈 같은 기업 경영 사안부터 제품 세부 스펙(사양)까지 간섭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업계는 지난 14일(현지시간) EU 의회에서 통과된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신배터리법)의 배터리 탈착 조항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서비스센터에서 교체가 가능하고, 폐배터리 재활용도 하고 있다”며 “EU가 왜 뜬금없이 탈착식 배터리를 친환경 정책으로 내세우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EU 의회가 통과시킨 신배터리법은 ▶배터리 전 주기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탄소 발자국’ 제도 ▶리튬·니켈 등 광물 재사용 ▶휴대용 전자기기의 배터리를 소비자가 직접 탈착·교제할 수 있게 설계하는 제도 등을 골자로 한다.

과거 대부분의 휴대폰은 탈착식 배터리를 채택했지만, 현재는 ‘배품폰’(배터리 품은 폰)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제품을 더 얇고 확장성 있게 디자인할 수 있고, 방수·방진 기능 적용에 유리해서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부터, 삼성전자는 2015년 갤럭시S6 시리즈부터 일체형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EU의 탈착 배터리 제도 시행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실제 법이 시행된다면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제품 설계부터 생산라인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해 혼란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스마트폰 제조사가 대부분 일체형 배터리를 채택하고 있어, 실제 법 시행이 되려면 업계 논의와 공청회 절차 등이 먼저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아울러 EU는 환경·기후변화 정책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CBAM이 대표적이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출하는 경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추정해 ‘탄소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먼저 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시멘트·수소제품 등 6개 품목이 대상으로, 오는 10월부터 ‘보고 의무 부과 기간’(전환 기간)이 시작된다. 철강의 경우 한국의 EU 수출액이 적지 않고, 탄소 배출이 많은 고로 공정의 비중이 높아 향후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는 “CBAM은 한국 기업의 환경 관련 생산비용을 상승시킬 것”이라며 “대상 품목의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CBAM 신고서 제출, 인증서 구매 등 규정 준수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지난 1월 발효된 ‘지속가능성 공시 지침’(CSRD)도 마찬가지다. 2025년 시행 예정인 ‘공급망 실사 지침’은 EU 내 매출 1억5000만 유로(약 2130억원) 이상인 기업에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실사 의무를 부과한다. 기업의 사업장과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환경 파괴 등을 파악해 개선하고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하는데 경영상 기밀이 포함될 수밖에 없어 기업들엔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EU가 친환경과 공급망 안정화 같은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국 산업 보호를 꾀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김두식 테크앤트레이드연구원 상임대표는 “미국이 자국주의·보호무역 등을 주도하다 보니 EU가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 기업에 직접 피해를 주는 부분은 정부가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기업들도 경영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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