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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수업에 활용…앞으론 질문 잘해야 우수한 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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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유지범 성균관대 총장은 “가장 먼저 혁신하는 대학이라는 DNA가 있다. 혼자 빨리 가지 않고 함께 멀리 가는 대학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유지범 성균관대 총장은 “가장 먼저 혁신하는 대학이라는 DNA가 있다. 혼자 빨리 가지 않고 함께 멀리 가는 대학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올해 1월 성균관대 총장으로 취임한 유지범(64) 총장은 지난 1학기 동안 매주 학생들과 만났다. ‘담대한 대담’이라는 이름으로 매주 월요일 오전 학생들과 티타임을 가진 것이다. 총학생회, 단과대학 학생회, 학내 언론사 학생은 물론 동아리 학생들까지 15회에 걸쳐 학생 100여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회성 행사로 그칠 것이라 예상한 교수들도 놀랐다.

그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학생이 뭘 바라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며 “2학기에는 각 학과 학생들까지 다 만날 것”이라고 했다. 취임과 동시에 ‘학생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선언한 유 총장에게 성균관대의 혁신 구상을 들어봤다.

취임하면서 ‘존경받는 대학’을 만들겠다고 했다.
“대학끼리 경쟁이 심해지고 학생들도 점수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는데, 좀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근본적 문제가 뭔지 고민하고 도전하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본다. 존경받는 대학은 사회를 인도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적 책무를 다 하는 대학이다.”
‘성대다움’도 언급했다.
“우리 교가에 ‘배움만이 보배 아닌, 인의예지 그 자랑인’이라는 구절이 있다. 배움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인의예지를 갖춘 인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성균관은 예로부터 국가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현대에서도 기본을 갖춘, 선비다운 지도자를 기르는 게 성대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빠르게 발전한 대학 중 하나로 꼽힌다.
“1996년 삼성 재단이 들어온 이후 혁신적인 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기존에 소위 ‘SKY’로 대표되는 대학의 질서를 깨고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했다. 선택과 집중으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중간 점검을 하면서 발전했다. 이제는 혁신이란 말이 너무 흔해졌지만, 우리는 새로운 혁신을 하려고 한다. 다른 대학이 모두 하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교육에선 어떤 혁신을 생각하나.
“대학에 와서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게 해주고 싶다. 그러려면 전공이라는 벽을 낮춰야 한다. 학과마다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전공 학점을 대폭 낮춰서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고 배울 수 있게 하겠다.”

그는 스무살에 선택한 전공을 졸업할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현 제도를 “가두리 양식장 같다”고 표현했다. 문화와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나가기 전에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성균관대는 학생 선택권 확대를 위한 교육과정 개편에 착수했다.

대학에서도 챗GPT 같은 생성형AI 기술이 화제다.
“지난 2월부터 챗GPT를 어떻게 교육에 활용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고, 정보를 모은 ‘챗GPT SKKU’ 홈페이지도 따로 만들었다. 2학기부터는 챗GPT를 활용하는 수업 모델을 운영해볼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답을 잘 하면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챗GPT에서는 질문을 잘 해야 우수한 학생이다. 수업은 물론 입시까지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연구 분야에서는 어떤 혁신을 계획하나.
“연구의 양이 아니라 질로 가야 한다. 높은 수준의 연구,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연구를 더 강조할 것이다. 임기 내에 글로벌 TOP 10에 4개 분야를 진입시키는 게 목표다. 반도체, AI, 양자기술, 바이오 등에 잠재력이 있다. 또 성균관에는 625년의 인문학 전통이 있다. 과학이 연구하고 인문학이 답하는 융합 심포지엄을 정례화할 것이다.”
최근 반도체 등 첨단학과가 많아졌다.
“대학이 첨단과학을 가르치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다. 2006년 삼성전자와 협력해 학사과정에 국내 최초로 채용연계형 학과인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만들었다. 최근엔 교육부에서 347명(대학원 251명, 학부 96명)의 첨단학과 증원을 받아서 2학기 대학원에 반도체융합공학과 등의 첨단학과를 만들고, 내년엔 학사과정에 반도체융합공학과와 에너지학과를 신설한다.”
캠퍼스 재구조화 구상도 밝혔다.
“학문적 특성에 따라 학교 밖으로 나가 캠퍼스를 확대하자는 생각이다. 인문사회캠퍼스 근처 대학로는 문화예술의 중심지인데, 이점을 활용해 문화예술 융복합 센터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자연과학캠퍼스는 근처에 판교가 있는데 이곳에 반도체, 소프트웨어, AI와 관련된 캠퍼스가 진출해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다. 바이오도 또 다른 캠퍼스로 나갈 수 있다. 학부보다는 주로 대학원 등 연구 기능이 이동하게 될 것이다.”
취업난 속에서 의대 등 특정 전공에 쏠림이 심한데.
“안정적이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의대 인기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심하게 쏠리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교육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문과적 소양을 갖춘 이공계생, 이공계적 소양이 있는 문과생이다. 전공의 벽을 낮춰 이런 인재를 키운다면 ‘문송합니다’란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대학이 위기다.
“학생 수가 줄면 우수한 학생, 대학원생 모집도 어려워진다. 코로나19때 잘 갖춰놓은 비대면 수업 시스템을 활용해 우수한 외국 학생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행히 한국을 선호하는 수요가 아시아권에 많이 있고, 성균관대를 찾는 유학생도 많다.” 

☞유지범 총장=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재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다 1994년 성균관대 교수로 부임했다. 학내에서 공학교육혁신센터장, 공대학장, 자연과학캠퍼스 부총장, 산학협력단장 등을 지냈고,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 나노기술연구협의회장, 국가전략기술조정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래핀 양산 기술을 개발한 나노 분야 과학자로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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