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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도 아무도 모르는 '유령아동' 2236명, 복지부 "전수조사하겠다"

중앙일보

입력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원 영아 살해 사건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원 영아 살해 사건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유령아동'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정부가 병원의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안된 아동들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감사원의 감사내용에 따라 경찰청·질병청·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임시신생아번호만 있는 아동의 소재·안전 확인을 위하여 전국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자체를 통해 아동 보호자에게 연락해 아동의 안전상태를 확인하고, 아동이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때에는 경찰청 등 관련 기관과 협력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복지부는 먼저 감사원이 파악한 미신고 아동 2236명(2015~2022년생)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추후 조사 대상을 넓힐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차관은 "위기아동 발굴을 위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에 임시신생아번호만 있는 아동도 포함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 마련을 위해서는 아동이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경우 출생신고에서 누락되지 않게 출생사실이 지자체에 자동 통보되는 '출생통보제'와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산모를 지원하는 '보호출산제'가 조속히 도입되도록 관련 부처, 국회와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기들은 각각 2018년, 2019년 출생 직후 생모 A씨에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 5년간 냉장고에 유기됐지만 세상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A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지난 4월부터 필수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만 2세 이하 1만1000여명에 대해 아동학대 여부를 전수 조사했다. 지난 2월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20개월 남자아이가 학대 끝에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복지부의 조사 대상은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아이로 한정돼 수원 두 아기같이 출생 신고조차 되지 않은 아이들은 사각지대에 남았다.

사각지대의 '유령 아동'은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복지부에 대한 정기 감사에서 위기 아동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출생신고 안 된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이 이들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한 건 7자리 ‘임시신생아번호’였다.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생후 12시간 이내 B형 간염 예방접종을 한다. 출생 직후 아기들은 주민번호가 없기 때문에 접종 시 질병관리청으로부터 7자리 ‘임시신생아번호’를 받는다. 병원에서 태어난 수원 두 아기도 이 번호를 받았다. 이 번호에는 아이의 출생일ㆍ성별ㆍ출생병원ㆍ보호자 인적사항이 함께 기록되고, 이후 보호자가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로 자동 전환된다. 감사원 관계자는 “임시신생아번호가 (주민번호로 전환되지 않고)아직 있다는 건 출생신고가 안 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조사결과 2015년에서 2022년 사이 태어난 아기 2236명의 임시신생아번호가 유지되고 있었다. 감사원이 이 중 23명을 선별해 조사하는 과정에 수원 두 아기가 발견됐다.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이들이 방임과 학대 위험에 노출된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차례 확인됐다. 2021년 인천 미추홀구에선 엄마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채 8살까지 키우던 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 국회에선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이시ㆍ읍ㆍ면 등 지자체장에게 의무적으로 출생을 알리도록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을 여러 건 발의됐다. 하지만 몇년째 잠자고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3월,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개정법안은 아직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서 논의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이 제도를 반대해온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선 “산모를 더 위험한 출산으로 내모는 제도”라고 반발한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스스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산모는 미혼모ㆍ미성년자 출산 등으로 공개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병원이 그들의 출산을 강제로 지자체에 통보하는 건 화장실 출산 같은 위험한 출산으로 산모를 내모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행정적 실수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을 의료기관에 전가하게 될 것도 우려하고 있다.
출산 사실 공개를 꺼리는 산모가 위험한 출산으로 내몰릴 것에 대한 대안으로 제기되는 게 ‘보호출산제도’다. 아이를 출산한 산모의 정보를 비공개하고, 산모가 아이를 기르지 못할 경우 지자체에 안전하게 인도할 수 있게 지원하는 내용이다. 조규홍 장관은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호출산제는 출산통보제를 보완하는 방안이라 두 법이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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