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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ㆍ일ㆍ중 '뿔뿔이' 의원 외교…한국 외교엔 여야 따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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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가운데) 배진교 원내대표와 강은미(왼쪽) 후쿠시마오염수저지TF단장,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항의하기 위해 22일부터 방일 일정을 시작한다. 연합뉴스

정의당(가운데) 배진교 원내대표와 강은미(왼쪽) 후쿠시마오염수저지TF단장, 이은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항의하기 위해 22일부터 방일 일정을 시작한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방중, 정의당의 방일, 국민의힘의 방미.

최근 정치권이 잇따라 의원외교의 나서고 있다. 그런데 목적지와 목표가 제각각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지난 4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문제 삼으며 일본을 방문했고, 지난 12·15일엔 '대중(對中) 외교의 빈틈을 채우겠다'며 대규모 방중단을 꾸렸다. 정의당도 22일 배진교 원내대표 등 원내지도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를 외치며 일본으로 향했다.

의원 외교는 전통적 차원의 정부 외교 채널과 함께 국가 외교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공식 외교 활동이다. 적재적소에 활용되면 정부 간 공식 외교 채널로 풀기 어려운 갈등 해소의 단초를 마련하고 협력의 강도를 높이는 윤활유가 된다. 지난 4월 발표된 정미애 세종연구소 특임연구위원의 ‘의회외교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회에선 12개의 의회외교포럼과 115개의 친선협회가 운영되고 있다. 다양한 채널의 의원외교가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성과 없이 논란만 키우는 의원외교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미-한일 정상회담 등 대형 정상외교 이벤트가 이어지고, 각종 외교안보 현안이 급부상하며 정치권의 의원 외교도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미-한일 정상회담 등 대형 정상외교 이벤트가 이어지고, 각종 외교안보 현안이 급부상하며 정치권의 의원 외교도 활발해지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그런데 최근 각 정당이 추진한 의원외교의 형식·일정·내용을 살펴보면 상대국과의 친선·협력 강화나 갈등 해소 등 본래의 목적과 배치되는 국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두 차례에 걸친 민주당 의원들의 방중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은 민생경제위기대책위 소속 김태년·홍익표·고용진·홍기원·홍성국 의원 등 5명이 지난 12~16일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지난 15~18일엔 도종환·김철민·박정·유동수·김병주·민병덕·신현영 의원 등 7명이 중국과 티베트를 찾았다.

지난 17일 중국 티베트 라싸에서 열린 제5회 티베트 관광문화국제박람회에 참석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지난 17일 중국 티베트 라싸에서 열린 제5회 티베트 관광문화국제박람회에 참석한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민주당 의원들이 중국을 방문했던 시기는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으로 한·중 관계의 긴장이 치솟은 극도로 민감한 시점이었다. 특히 도종환 의원 등은 싱 대사 관련 논란 속에 진행된 당내 민생경제위기대책위 소속 의원들의 방중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이어진 와중에 중국 정부 초청을 받고 티베트 관광문화 국제박람회에 참석했다.

당초 서방 주요 국가들은 이번 박람회가 자칫 티베트에서의 인권 탄압 논란을 희석하려는 중국의 의도에 말려들 것을 우려해 대부분 불참을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도 의원 등의 티베트 박람회 참석은 "티베트 인권 문제를 희석하려는 중국의 선전술에 이용당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장은 21일 중국 방문 일정 관련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뉴스1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장은 21일 중국 방문 일정 관련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뉴스1

"중국 외교 지원 행위" vs "여당 역할 대신한 것" 

이러한 비판에 대해 민주당은 "정부나 집권당이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야당 의원들이 대신 해준 것"(김태년 의원·21일 간담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권과 관련한 중국의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지적에 대해선 "(인권과는) 별개의 문제로 봐주면 좋겠다"(도종환 의원·19일 라디오 인터뷰)고 했다. 그러나 방중 일정에 동행했던 민병덕 의원은 "70년 전에 있었던 그 내용을 우리가 부각하면서 계속 외교가에서 얘기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며 중국의 인권 탄압을 '지난 일'로 치부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대한불교조계종은 지난 21일 “세계인들의 티베트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는 보편적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모른다거나 옛날 일로 치부하는 발언에 놀라움과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하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항의·투쟁만 가득한 방일 일정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대책단' 소속 위성곤·양이원영·윤영덕·윤재갑 의원은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대책단' 소속 위성곤·양이원영·윤영덕·윤재갑 의원은 지난 4월 일본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야당의 이러한 의원외교에 대해선 정부가 인권ㆍ자유ㆍ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강조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한ㆍ중 관계의 긴장감을 완화하는 범퍼 역할을 하기 보다는 국내 정치적 갈등을 해외로 연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둘러싼 의원외교 역시 국내 정치적 충돌의 연장선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 4월 민주당 소속 양이원영·위성곤·윤영덕·윤재갑 의원 등은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 오염수 처리에 대한 투명성을 확인하고, 방류에 반대하는 일본 측 인사들과의 연대를 내세우며 일본을 방문했다. 그러나 도코전력은 물론 일본 당국자와의 만남도 성사되지 못했다. 특히 한·일 의원외교의 카운터파트인 '일한의원연맹' 측 인사들과의 면담마저 거부당했다.

정의당 의원들도 22일 도쿄전력을 항의 방문하고 일본 내 오염수 방류 항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한 방일길에 올랐다. 또 일본 사회민주당과 함께 후쿠시마 제1 원전 부지를 시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찰을 하기도 전인 이날 “오염수 방류를 저지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다”(배진교 원내대표)는 입장을 발표하며, 투명성 확인을 위한 시찰보다는 국내 방류 반대 여론을 염두에 둔 방일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한편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 등 10여명은 다음 달 10일부터 1주일간 미국을 공식 방문하기로 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의 후속 조치다. 여당 의원들의 방미에 대해서도 ‘국내 홍보용 방미’가 돼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여론을 상대로 한 외교 성과 홍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반도체, 북핵 등 한·미 현안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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