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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고나 직원일탈 반복되면 CEO에 책임 묻는다

중앙일보

입력

앞으로 금융회사는 임원별로 내부 통제 관련 구체적인 책임 영역을 사전에 확정한 ‘책무구조도’를 만들어야 한다. 업무 책임자를 명확히 해 사고 발생시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막기 위한 조치다.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거나 내부 직원의 일탈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경우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묻는다. 단 제재 수위는 정해지지 않았다.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융협회장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뉴스1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융협회장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희수 생명보험협회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김주현 금융위원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뉴스1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금융권 협회장 간담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우리은행 700억원 규모 횡령 사고나 2019년 은행들의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사태 등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금융회사가 앞으로 작성해야 할 책무구조도에는 직책명과 임원의 이름, 내부통제 관련 책무 내용이 담긴다. 구체적인 책무는 향후 개정될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시행령에 담긴다. 대상은 CEO,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와 같은 ‘C-레벨’ 임원이다. 대형은행 기준 20∼30명 수준이다. 책무구조도는 이사회 심의·의결을 거쳐야 하고, 금융당국에도 제출해야 한다. 실제 권한 행사자와 책무구조도상 임원의 불일치 등에 대한 책임은 CEO가 진다.

CEO는 또 내부통제 총괄 책임자로서, 전사적 내부통제체계를 구축하고 각 임원의 통제 활동을 감독해야 한다. 특히 회사 내에서 조직적·반복적이고 장기간 사고가 발생하는 등 내부 통제의 시스템적 실패가 나타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 및 절차(내부통제 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책임 영역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파생결합상품(DLF) 사태’ 관련 당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내부통제 부실 등을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지만 ‘징계 근거가 없으니 이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대법원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와 ‘준수’ 의무는 구별돼야 한다고 밝혔다.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위반한 임원에 대해서는 면직‧감봉 등의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 다만 관리 조치를 충분히 했음에도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는 책임의 경감 혹은 면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당초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 나오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 방안에는 내부통제에 대한 총괄 책임이 CEO에 있다는 것을 명시했을 뿐, 중대 금융사고에 대한 규정과 CEO 제재 수위는 빠졌다. 자칫 금융사에서 발생한 모든 사고가 CEO의 해임 등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냐는 금융권의 우려를 반영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방안에 대해 “제재가 아닌 예방에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번 개선안은 금융회사가 각자 특성과 경영 여건에 맞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스스로 마련·운영토록 하되 임원 개개인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 놓도록 한 것”이라며 “제재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며 관련 의무를 충실히 한 임원은 책임을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금융당국은 은행의 소극적인 내부 통제 관행도 질타했다. 김영주 금감원 부원장보는 이날 ‘2023년 상반기 은행권 내부통제 워크숍’에서 “은행 금융 사고가 반복되는 기저에는 영업 실적이나 업무 편의를 우선시해 업무 절차 미준수를 용인하거나 법규상 최소한의 절차만 지키면 된다는 소극적인 태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번 방안은 법 개정 사항으로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되면 1년의 경과 기간을 거쳐 은행·금융지주를 대상으로 우선 적용한다. 이어 2단계로 대형 금융투자회사 및 종합금융투자회사, 대형 보험사 등에 6개월 이후 도입된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책무구조도를 통해 임원에 관리 의무를 명확히 한 만큼 제대로 운영된다면 금융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금융회사가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로 책임을 지는 등이 불분명해 향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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