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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처칠 모시듯 초특급 예우"...러시아도 구애, 인도 모디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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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워싱턴에서 이런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코노미스트)

20일(현지시간) 닷새 일정으로 이뤄질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미국 국빈 방문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모디 총리가 미·중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신냉전 시대의 '외교 키맨'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힌두스탄타임스·인디아투데이 등에 따르면 모디 총리는 과거 몇 차례 미국을 찾은 적이 있지만, 국빈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도 총리의 미 국빈 방문은 15년 만이기도 하다. 인도 언론은 모디의 이번 방미가 양국 관계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도착해 환영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도착해 환영받고 있다. AP=연합뉴스

美와 방산 협력 강화..."처칠·만델라급 예우" 

모디 총리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2일 정상회담에서 경제·기술·방산 협력 강화를 주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미 제너럴일렉트릭(GE) F414 전투기 제트엔진을 인도에서 공동 생산하고, 나아가 인도에 기술을 이전하는 협정을 맺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인도가 미국으로부터 MQ-9B 무장 드론 30대 구매에 합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모디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디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디 총리는 지난 2016년에 이어 이번 방미 기간에도 상·하원 합동연설에 초청받았다.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두 차례 이상 한 외국 정상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으로 손에 꼽힐만 적다. 때문에 외신에선 "미국이 모디에게 처칠·만델라급의 초특급 예우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뿐만 아니라 그를 만나기 위해 빅테크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총집결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애플의 팀 쿡,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MS의 사티아 나델라 등이 미국을 찾은 모디 총리를 만났거나 만날 예정이다.

과거의 '굴욕'과 비교하면, 이번 모디 총리의 방미는 달라진 인도의 위상을 실감 나게 한다. 힌두민족주의자인 그는 주 총리로 있던 구자라트에서 발생한 힌두와 무슬림 간 유혈 충돌 당시 힌두 편에 서서 사태를 방관했다는 이유로 2005년 미국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

인도는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고, 세계 4위의 군사 대국이기도 하다. 오는 9월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국제 무대의 중심에 설 채비도 하고 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줄타기 외교로 몸값 높이는 모디  

인도는 전통적으로 비동맹 중립 외교 노선을 추구해 왔다. 누구 편을 들지 않지만 중요한 경제·군사·외교 협력 상대로 꼽혀 강대국들의 구애를 받는다.

서방에게 인도는 인구·시장 규모에서 중국을 대체할 유일한 나라다. 서방의 제재로 수세에 몰린 러시아도 주요 교역국으로서 인도에 공을 들이고 있다.

모디 총리는 양측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며 '몸값'을 높이고 있다. 서방과 가깝게 지내며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소련 시절부터 가까웠던 러시아와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척을 지지 않고 실리를 챙기고 있다.

인도의 전 국가안보보좌관 시브샨카르 메논은 모디 정부와 전임 만모한 싱 정부의 가장 큰 외교 정책 차이를 '친서방 정책 강화'로 꼽았다.

모디는 취임 이듬해인 2015년 공화국 기념일 주빈으로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초청하며 친서방 행보의 신호탄을 쐈다. 당시 두 정상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확장 정책을 억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공동전략비전' 등을 발표했다. 인도는 미국·일본·호주와 안보협의체 쿼드(Quad)의 일원으로 연례 연합군사훈련인 말라바르에 참여하고 있다.

또 올 초엔 미국과 첨단기술·방산 분야 협력 강화 방안을 담은 핵심·첨단기술 구상(iCET)에 합의했다.

모디 총리가 20일 뉴욕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디 총리가 20일 뉴욕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동시에 인도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엔 동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러시아산 원유를 싼값에 대량 구매하는 등 교역을 늘려 지난해 인도·러시아 간 교역액(398억 달러, 약 51조원)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랜 기간 러시아산 무기에 의존한 인도는 현재 보유한 무기 중 60~85%가 러시아산이다.

인도는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정치·경제·안보협의체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일원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엔 러시아가 주도한 다국적 군사훈련(보스토크-2022)에 참여했다. 인도는 앙숙 관계인 파키스탄과 밀착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를 멀리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인도의 이런 태도를 문제 삼지 않는다. 이를 두고 포린폴리시는 "인도가 글로벌 강대국이 될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인도는 아프리카·중동 국가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때문에 인도가 비동맹을 표방하고 있으나, 따져보면 국익을 앞세운 '전부 동맹' 외교를 편다는 진단도 나온다.

"인도, 미·중과 G3 부상 가능성"  

달라진 모디의 위상은 국제무대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지난달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제일 먼저 찾아가 자신의 평화 구상안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한 이가 모디 총리였다.

또 모디는 다음 달 14일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릴 프랑스 대혁명 기념 열병식에 주빈으로 초청받았다. 지난달 호주 방문 때 CNN은 그가 '록스타급' 환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인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고 있는데, 미국과 러시아 양측의 지지를 모두 받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 6월 21일 세계 요가의 날에 요가를 지도하는 모디 총리의 모습. AP=연합뉴스

2018년 6월 21일 세계 요가의 날에 요가를 지도하는 모디 총리의 모습. AP=연합뉴스

김찬완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소장은 중앙일보에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도 인도 외교 정책의 근간인 전략적 자율성 기조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 세계 최대 인구와 거대 시장을 가진 인도는 미국·중국과 더불어 주요 3개국(G3)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찬완 소장은 "한국에게도 인도는 중국 견제는 물론 산업 구조적 측면에서도 협력할 부분이 많다"며 "올해 한국과 인도 수교 50주년을 계기로 협력 강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계 자국민 지지율 1위..."인프라 개선에 탁월"

집권 10년차가 된 모디 총리는 자국민으로부터도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세계 주요국 지도자의 국내 지지율을 정기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미 여론조사 기관 모닝컨설트에 따르면 모디의 지지율은 75%(지난 7~13일 기준)로, 조사 대상 국가 중 압도적인 1위였다. 모닝컨설트의 조사가 시작된 이후 그의 지지율은 6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그는 인도의 열악한 인프라 개선에 지도력을 보였단 평가를 받는다. 취임 후 당시 농촌에 만연했지만, 기성 정치인들에게 외면받던 노상 배변 문제 해결에 나섰다.

'클린 인디아' 프로젝트를 통해 화장실 보급에 힘쓴 결과 인도 농촌 가구의 노상 배변은 2012년 60% 수준에서 2021년 21% 수준으로 감소했다. 도로와 항구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요리 연료로 실내 공기 오염을 유발하는 소똥 대신 가스 사용을 장려했다.

알리사 아이레스 조지 워싱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모디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그가 경제와 인프라 프로젝트에 매우 능숙하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전했다.

"민주주의 후퇴" 지적도...내년 3연임 도전  

모디 총리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앞세워 제조업을 육성하고 글로벌 기업의 생산시설 유치에도 힘썼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올해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5.9%로 전 세계 전망치 2.8%나 미국 1.6%, 중국 5.2% 등 주요국 전망치보다 높다. 모건스탠리는 인도가 10년 안에 일본·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에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18세에 결혼했으나 곧 헤어져 지금까지 독신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일 중독자'이기도 하다.

모디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가 힌두민족주의를 앞세워 나라를 분열시키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난한다. 실제로 인도는 언론 자유, 선거 민주주의 지수에서 세계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일각에선 모디 총리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모디가 속한 여당 인도국민당(BJP)은 지난 5월 남인도 핵심 주 중 하나인 카르나타카 주의회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럼에도 내년 인도 총선에서 그의 3연임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찬완 소장은 "선거에서 '모디 매직'이 약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경쟁자인 야당 지도자 라훌 간디의 위상이 아직까지 모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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