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영대의 문화이슈

BTS 10년, K팝 10년…세계를 묶은 이야기의 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영대 음악평론가

김영대 음악평론가

방탄소년단의 지난 10년은 의심할 바 없이 K팝의 10년이다. 그들이 이뤄낸 모든 개별적인 성취는 곧바로 K팝의 역사적 성과로 명명되었고, 그들이 세운 모든 기록은 목격은 했으되 어떻게 가능했는지 의아한 금자탑이 되어 영원히 기려질 것이다.

누구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열정의 발자취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것이 흉내 낼 수는 있지만 복제될 수 없는 무엇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서 더 가치 있다.

세계 대중음악 바꾼 위대한 사건

대중음악의 역사를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에너지와 시대정신이 모여 만들어 낸 ‘순간’이 있다. 미국을 침공해 로큰롤 혁명을 완성한 비틀스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그러했고, 음악방송 MTV를 등에 업고 리듬앤블루스 가수 최초의 ‘팝 아이콘’으로 우뚝 선 마이클 잭슨의 전 지구적인 팝 보편주의가 그랬다. 지난 10년간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를 누비며 이뤄낸 ‘BTS 현상’과 ‘K팝 혁명’도 머지않아 세계 대중음악계를 바꾼 위대한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민족적 자긍심 뛰어넘는 성과
제도·자본의 힘 없이 일군 기적
지구촌 ‘아미’ 울린 젊은이 얘기
인문적 성찰 담긴 서사 필요해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 기념 축제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렸다.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BTS의 팬클럽 ‘아미’ 행렬. [연합뉴스]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 기념 축제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열렸다.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BTS의 팬클럽 ‘아미’ 행렬. [연합뉴스]

한국인의 입장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 관점에서 K팝의 성취를 바라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이 이룬 성과도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빌보드 1위나 미국 주류 음악 행사에서의 수상 같은 것으로 주로 회자한다. 모두 믿을 수 없이 가슴 벅찬 것이지만 ‘BTS 현상’의 본질이 그게 전부라면 조금 허무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자. 방탄소년단의 전례 없는 국제적 성공을 만든 아미의 상당수는 우리가 느끼는 민족적 자긍심 같은 것과는 무관한 세계인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한류’나 ‘K팝’의 성공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할 수밖에 없다.

방탄소년단의 궤적을 따라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것은 재능과 열정이 마침내 그에 합당한 결과로 이어지는 증명의 서사이며, 나아가서는 ‘우리가 함께라면 사막도 바다가 돼’라는 아미들의 슬로건에 담긴 것처럼 불가능해 보였던 모든 것들이 함께함으로써 이뤄지는 기적 같은 승리의 체험인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거대산업이 기획해내지 않은, 제도권의 힘과 자본이 강제하지 않은, 아래로부터 비롯된 유기적인 프로세스에 의한 글로벌 팝 아티스트의 탄생이라는 것에 수많은 사람이 열광했고 그 흐름에 가담하기를 원했다. ‘유명해서 유명한’ 그저 그런 팝 아티스트가 아니라 ‘성공해야 할 이유가 있는’ 언더독의 서사는 그렇게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의 10년을 맞아 그다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 비틀스가 영국 대중음악에서 갖는 위상이 그러했듯, 방탄소년단의 위상과 그 업적은 그 어떤 다른 아티스트들로 쉽게 대체되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키운 K팝의 파이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지난 20여년간 K팝은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트렌드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이 SM 이수만이 제시한 ‘아이돌’ 산업인 것이고, 방시혁은 K팝이 놓쳐왔던 진정성의 서사를 더해 ‘BTS 현상’을 끌어낼 수 있었다. 최근 뉴진스 열풍이나 피프티피프티의 세계시장 활약에서 보듯 K팝이 전형적인 K팝스러움을 벗고 조금 더 유연하고 보편타당한 대중음악으로 나아가는 대안적 방법론도 주목받고 있다. 모두 하나의 유효한 ‘옵션’들이다.

장르와 기술이 평준화한 세상

나는 새삼 K팝이 풀어낼 ‘이야기’에 주목한다. 10년 전만 해도 세계인에게 K팝은 알 수 없는 외국어로 불리는 비주얼적 유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인의 이야기와 생각을 궁금해하고, 한국의 모던함이 세계의 표준이 되는 것도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장르가 무의미해지고 기술적인 평준화가 일어나고 있는 음악시장에서 대중음악의 성공은 결국 어떤 매력적인 이야기와 서사를 통해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앞으로  K팝 산업은 인문학적인 통찰과 상상력을 가진 이야기꾼들의 역할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보편적인 서사를 통해 K팝의 새 장을 연 방탄소년단의 성공이 남긴 가장 큰 교훈도 바로 그것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