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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MB는 수능 손보다 역풍…尹 "킬러문항 폐지" 사교육 잡나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대통령이 꺼낸 ‘공정한 수능’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19일 정부·여당이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능에서 ‘킬러 문항’으로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야당은 “대통령 발언으로 대입 수능이 혼란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3.6.19/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3.6.19/뉴스1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 말 한마디에 대입 수능이 혼란에 빠졌다”며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란에 이어 최악의 교육 참사”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특히 “올해 수능은 지금까지 지켜온 방향과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준비하지 않은 전환은 혼란을 가져온다”며 “꼭 추진하고 싶다면 수험생과 학부모님의 충분한 의견을 수렴해 내년에 추진할 수 있도록 검토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 교육위 간사인 김영호 의원은 통화에서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이렇게 쉽게 얘기하면 안 된다”며 “올해 수능이 쉬워져도, 어려워져도 윤 대통령의 책임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에서도 공교육 정상화와 수능 난이도 조절을 통한 사교육 부담 완화라는 정부의 기조 자체에 대해선 “반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 민주당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는 모두 ‘사교육 부담 완화’를 목표로 대입제도 개편을 시도했지만, 대부분 큰 효과를 얻지 못하고 무위로 끝났었다.

노무현 정부는 내신을 상대평가 9등급제로 바꾸고, 수능은 점수 없이 9개 등급으로만 나누는 ‘내신·수능등급제’를 내세웠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수능에 대한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대학이 변별력 확보를 위해 내신평가와 대학별 논술고사까지 실시하면서 외려 ‘죽음의 트라이앵글(내신·수능·논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수능등급제는 2008년도 수능에서 한 차례 시행된 뒤 이명박 정부에서 곧바로 폐지됐다.

2007년 6월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과의 토론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무리발언을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입 3불(不) 정책(고교등급제ㆍ기여입학제ㆍ본고사 폐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7년 6월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과의 토론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무리발언을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입 3불(不) 정책(고교등급제ㆍ기여입학제ㆍ본고사 폐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쉬운 수능’을 강조했다. EBS 교재와 수능 연계율을 70%까지 높이고, 국·영·수를 수준별(A·B형)로 선택하는 ‘선택형 수능’ 제도도 도입했다. 이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변별력이 떨어진 수능 대신 창의력과 가능성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취지로 2009년 “임기 말 입학사정관제 100% 도입”을 공언했다. 그러나 “대학별 입학사정관 선발기준에 맞추기 위해 오히려 사교육 부담이 늘어난다”는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스펙 쌓기’ 열풍이 불면서 신종 사교육이 성행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3월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소재 EBS본사를 방문해 고교수능 국어강의를 녹화중인 교사를 격려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3월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소재 EBS본사를 방문해 고교수능 국어강의를 녹화중인 교사를 격려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의 병폐를 보완하겠다며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도입했다. 교외 활동을 배제하고 학교 내에서의 교육 활동을 위주로 작성한 학생부를 바탕으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인 학종은 대학별 기준이 공개되지 않아 ‘깜깜이 전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사교육을 잡겠다며 추진한 ‘심야 학원교습 제한’,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선행학습 금지법’도 불붙은 사교육 시장을 진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와 정시확대추진 학부모모임 회원들이 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입 정시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2019.11.7/뉴스1

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와 정시확대추진 학부모모임 회원들이 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입 정시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2019.11.7/뉴스1

문재인 전 대통령도 수능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었다. 2019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뒤였다.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문제로 대입 수시전형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내놓은 대책이었지만, 일각에선 “정시 확대가 오히려 고소득층 자녀에게 유리하다”는 반발이 일었다. 문 전 대통령 발언 직전까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학생부 종합전형의 개선이 우선”이라며 정시 비중 확대에 선을 그은 걸 두고 엇박자 논란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수능 발언’에 대해 “방향성은 공감하지만, 말 한마디에 제도가 오락가락하면 학생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평균 난이도를 조절하면 사교육 억제효과가 어느 정도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참으로 적절한 정책을 부적절한 시기에 부적절한 방식으로 내놓은 게 문제”라고 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사교육특별대책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도종환 민주당 의원은 “역대 정부에서도 10년, 20년째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전문가들과 함께 대학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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