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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로펌 압색 트라우마...변협, 15곳과 '비밀유지 법제화 TF'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서초구 대한변호사협회 회관. 뉴스1

서울 서초구 대한변호사협회 회관. 뉴스1

 대한변호사협회가 변호사 비밀유지권(ACP, Attorney-Client Privilege) 법제화를 위해 대형로펌들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 로펌 보관 서류를 타깃으로 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막기 위해 변협과 대형로펌들이 공동 전선을 펼치는 모양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변협은 최근 8대 대형로펌(김앤장,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 바른, 대륙아주)을 비롯한 15개 로펌 변호사 19명으로 ‘ACP 추진 특별위원회 태스크포스(가칭)’ 준비모임을 구성했다. 참여한 변호사들 대부분은 각 로펌 내 입법컨설팅 조직 소속으로 알려졌다. 변협 관계자는 “변호사 비밀유지권은 변호사 업계 전반이 관련된 문제인 만큼, 법안 도입을 위해 대형 로펌들의 인재 풀도 활용해보자는 의견이 있어 TF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변협은 당초 20개 로펌에 공문을 보내 TF 참가 의사를 물었지만, 이 중 15개 로펌만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김영훈 변협 회장은 각 로펌 대표 변호사들을 초대해 간담회를 열고 “우리 힘으론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취지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일부 변호사들은 반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로펌 변호사는 “사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사업자단체인 변협이 대형 회원들의 역량을 무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기업들에게 ‘돈을 내라’고 한 거랑 뭐가 다르냐”며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로펌 압색’, 금기→수사 루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뉴스1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모습. 뉴스1

 영미권 국가들 특유의 제도인 변호사 비밀유지권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에 오간 대화나 자료 등을 제3자에게 공개하는 걸 금지하는 걸 골자로 한다. 일례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은 “의뢰인은 변호사와의 대화를 공개하는 걸 거부할 수 있고, 제3자가 이를 공개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에도 변호사법에 따라 전·현직 변호사의 비밀 누설을 금지하곤 있지만(26조), 수사기관이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오간 자료를 수집해 증거로 쓰는 걸 명시적으로 막는 규정은 없는 상태다.

‘로펌 압수수색’을 그동안 막아 온 건 암묵적 금기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검·경이 율촌(2016년 롯데그룹 조세포탈 의혹)을 시작으로 김앤장(2018년 사법행정권 남용, 2019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태평양(2022년 김만배 범죄수익 은닉) 법무법인 사무실을 연이어 압색하면서 깨졌다. 이제 법조계에선 “검찰이 기업 수사를 할 때 로펌의 검토 보고서를 압수하기 위해 사내 법무팀부터 노린다”(대형로펌 기업형사 담당 변호사)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자연히 변호사 비밀유지권 법제화는 변호사들의 숙원사업이 됐고, 올해 초 임기를 시작한 김영훈 회장은 이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변협 관계자는 “비밀유지권은 국민의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기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며 “세계변호사협회(IBA)에서도 관련 입법을 권고할 만큼, (비밀유지권을 보호하지 않는 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의 반발도 만만찮다. 검찰 관계자는 “변호사의 비밀유지권은 어느 정도 보장돼야 하지만, 접견권이나 피의자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넘어서는 범죄 행위에 대해선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범죄에 손을 대는 변호사 수도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변호사가 저지르거나 가담한 범죄는 2011년 총 375건에서 2021년 591건으로 늘었다.

국제적으로도 화두…“화이트칼라 범죄 은폐” 지적도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모습.  뉴스1

서울 종로구 김앤장 법률사무소 모습. 뉴스1

 변호사 비밀유지권은 국제기구들 간에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021년 ‘야바위 게임의 끝(Ending the Shell Game)’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탈세·뇌물·부패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는 종종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적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복잡한 법적 구조와 금융 거래 속으로 은폐되곤 한다”고 지적했다. 유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재정 건전성 패널(UN FACTI Panel)도 같은 해 보고서에서 “여러 지역의 변호사들이 돈세탁과 다른 범죄 행위에서 범죄자들을 돕기 위해 법적 특권을 사용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IBA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독립적인 법조계는 법치주의의 중요한 초석”이라며 “단순히 정부나 국가 수장에 비판적인 의뢰인을 직업적으로 변호한다는 이유만으로 수감되는 권력의 남용 사례가 많다”고 반박했다.

TF는 향후 국회에서 계류 중인 변호사법 개정안에 대한 변협 입장을 전달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하게 될 예정이다. 변협은 조만간 상임이사회 안건으로 TF 구성안을 상정하고, 이르면 7월 중 TF를 출범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회엔 변호사 비밀유지권을 반영한 변호사법 개정안(정우택 국회부의장 안과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계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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