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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윤석열 정부 행안부는 왜 국민의힘 인천시를 제소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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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법이란 무엇인가. 공무원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최근 인천과 대구에서 '공권력 대 공권력의 충돌'이 잇따랐다. 전에 없던 일이다. 인천은 정당 현수막을 무제한 허용하는 옥외광고물법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고 대구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해석과 관련한 시 공무원과 경찰의 물리적 충돌이다.

겉으로 드러난 양상만 보면 두 사안의 결은 다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부처(행안부와 경찰)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이 이끄는 지자체와 갈등을 빚는다는 면에선 닮았다. 특히 대척점에 선 당사자들이 모두 "법대로"를 외치며, "관료의 역할"을 내세운다는 점도 똑같다. 단순히 지자체가 조례로 정당 현수막을 규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지자체가 도로를 점유하는 집회를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판단을 넘어 법을 적용하는 공무원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인천시를 중심으로 공권력 충돌 이면을 따라가 봤다.

지난 17일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 퀴어문화축제 와중에 행사 차량 진입을 막으려는 시 공무원과 이를 해산시키려는 경찰이 충돌했다. 뉴스1

지난 17일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대구 퀴어문화축제 와중에 행사 차량 진입을 막으려는 시 공무원과 이를 해산시키려는 경찰이 충돌했다. 뉴스1

행안부는 왜 민심과 다른 소송 했나

행안부는 지난 15일 인천시를 상대로 '정당 현수막 규제' 조례에 대한 무효 소송을 대법원에 제기했다. 인천시가 지난 8일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현수막 개수와 장소 등을 제한한 개정 조례를 공포했더니, 행안부가 일주일 만에 "위법"이라며 제소한 것이다. 쉽게 말해, '정치 공해' 논란을 빚으며 국민적 스트레스가 된 정당 현수막 규제를 폐기해 원상 복구하라는 요구다.

민주당 주도 민폐 옥외물법 놓고
"법대로" 내세워 여권끼리 갈등
대구에선 공무원과 경찰 충돌
시민 위한 법과 공직은 어디에?

김민철·서영교·김민국(현재 무소속) 등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이 지난해 말 시행된 이후 전국이 현수막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시민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세금 낭비에 환경 파괴에 이르기까지, 예상했던 모든 부작용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여론이 좋을 리 없다. 정부의 우려와 여러 전문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의 동조 속에 속전속결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던 민주당이 시행 3개월 만에 슬그머니 다시 개정안을 내놓았을 정도다. 그런데 왜 민주당이 만든 이 난장판을 놓고 윤석열 정부의 행안부가 굳이 소송까지 제기하며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시장이 이끄는 인천시와 갈등을 빚는 것일까. 이에 대한 행안부의 입장은 "법대로"다.

행안부가 제소 근거로 내세우는 법은 지방자치법 제192조다.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판단되면 주무부장관(행안부 장관)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장(인천시장)에게 재의를 요구하게 할 수 있고, 지자체장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주무부장관이 7일 이내에 대법원에 직접 제소 및 집행정지 결정을 신청할 수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신일철 행안부 생활공간정책과장은 "법률 자문 결과 인천시 조례는 (정당 현수막은 무제한 허용한다는) 법령을 위반했다"며 "현수막과 관련한 정부의 향후 방향성이나 상대가 여당 소속인지와 무관하게 합법 행정이라는 틀 아래서 제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마디로 "위법을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작 192조엔 '제소할 수 있다'고 돼 있을 뿐 제소를 꼭 해야 한다고 강제하지도, 또 제소를 안 했을 때 주무부처에 문제가 될 아무 처벌 규정도 없다. 굳이 제소를 강행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국회 앞에 내건 현수막. 정책과 무관하게 상대를 비난하는 혐오성 현수막이 전국을 뒤엎으면서 국민적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인천시를 조례로 이를 개수 등을 제한했으나 행안부가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중앙 포토]

더불어민주당이국회 앞에 내건 현수막. 정책과 무관하게 상대를 비난하는 혐오성 현수막이 전국을 뒤엎으면서 국민적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인천시를 조례로 이를 개수 등을 제한했으나 행안부가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중앙 포토]

"공무원은 기계적으로 판단한다"

신 과장은 이에 대해 "자판기에 500원짜리 동전 넣고 '사이다'를 누르면 사이다 캔이 나오는 것과 똑같이 우리는 (어떤 사안이 발생하면)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인천시의 취지엔 동의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철저히 중립적이고 법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해 5월 행안부 차관이 국회 행안위에 참석해 정당 현수막을 무제한 허용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데서 알 수 있듯 원래 행안부 입장은 인천시와 같다. 또 지난달엔 "국민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안의 정당 현수막 설치를 금지하고, 보행자나 차량 운전자 시야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곳엔 2m 이상 높이에 설치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왜 굳이 소송을 택했을까. "전국적인 통일성이 필요하기에 인천만 예외를 인정할 수 없어 소송을 제기했다"는 항변이지만, 일반 국민 눈엔 행안부의 이번 소송이 쓸데없는 행정력과 세금 낭비로 비치기 쉽다.

당장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시 조례 역시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과 똑같이 예외적으로 정당 현수막을 인정하고 있는데 뭐가 위법이라는 것이냐"고 반발했다. 그는 오히려 행안부의 직무 태만을 문제 삼았다. 개정안을 보면 시행령(대통령령)으로 얼마든지 개수 제한 등 규제를 가할 수 있는데, 행안부가 6개월이 지나도록 시행령을 만들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다.

대구서도 반복된 "나는 관료"

지난 17일 대구 퀴어문화축제 당시 주최 측이 도로에 무대를 설치하겠다며 차량 진입을 시도하자, 이 과정에서 대구시 공무원 500여 명과 대구경찰청 소속 경찰관 1500여 명이 집단 몸싸움을 벌이는 믿기 어려운 장면이 연출됐다. 여기서도 인천에서처럼 "법대로"를 내세운 대립과 "기계적 판단"이 등장했다.

대구경찰청은 대법 판례를 들어 공무원 진입을 막은 정당성을 주장한다. 반면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퀴어 축제를 못 하게 한 것이 아니라 도로를 점용하려면 허가를 받으라는 것"이라며 "공공도로를 무단으로 막고 퀴어 파티장을 열어준 치안 담당자(대구경찰청장)의 자의적인 법 해석 곡해는 위험하다, 파면감"이라고 했다. 이에 김수영 대구경찰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인 홍 시장과 달리 나는 관료"라고 했다. 시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상황 판단을 하기보다 해온 대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행안부 입장, 한심한 관료주의적 발상"

중앙 정부와 갈등하는 이유, 유정복 인천시장의 생각을 들었다.

유정복 인천시장. [중앙포토]

유정복 인천시장. [중앙포토]

-행안부는 인천시 조례가 상위법(옥외광고물법)에 저촉된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해 말 시행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은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현수막에 한해 예외적으로 (현수막 게시를) 용인한다는 게 골자다. 인천시 조례도 똑같이 인정한다. 다만 내용 불문 장소 불문 마구잡이로 현수막이 걸린 걸 규제하겠다는 거다. 지금 전국을 도배한 정당 현수막 어디에 정책이 담겨 있나. (다른 당이나 경쟁자에 대한) 억지 음해거나 사전 선거운동에 가까운 자기 홍보가 대부분이다. 이 법이 오히려 헌법이 정한 기본적인 평등권을 해칠 뿐만 아니라 선거법상 모든 후보가 동일하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권리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
-행안부도 방향성엔 동의하지만 법령에 위배되기에 법적 안정성을 위해 조례 무효 소송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행 옥외광고물법이 상위법인 헌법에 위배되는 건 왜 문제 삼지 않나. "

※유 시장은 지난 11일 페이스북에 행안부 재의 요구를 거부한 이유로 헌법이 보장한 시민의 기본권을 내세웠다. 정치인에게만 주어진 현수막 특권이 최상위법인 헌법을 위배하는 게 본질이라는 주장이다. 앞서 4월에도 국회 입법권 남용으로 쉐손된 국민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지키겠다고 썼다.

-행안부 장관 출신인데, 만약 현직 장관이라면 소송을 안 했을까.  
"행안부 결정은 존중한다. 다만 무엇이 더 큰 가치인지 묻고 싶다. 국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권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법 개정 탓에 우리 사회가 잘못돼가고 있다. 명백한 선거법 위반인데 선관위가 제대로 대응을 안 했다. 행안부 역시 할 일을 안 하고 있다. 개정안을 보면 시행령(대통령령)으로 개수 제한 등의 규제를 할 수 있다. 나뿐 아니라 언론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도록 행안부는 아무것도 안 했다. 직무 태만이다. 어떻게 보면 행정부가 할 일을 내가 대신해 주고 있는 셈이다. "
-인천만 현수막 개수 등을 제한하는 건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게 행안부 입장이다.  
"아주 한심한 관료주의적 발상이다. 잘못된 걸 고치겠다는데, 남들은 가만있으니 너도 가만있으라는 건 말도 안 된다. 다른 지자체 판단은 내가 뭐라 할 사안이 아니다. 다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극대화할 정도로 잘못된 법을 조례로 보완하겠다는데 뭐가 불법인가. 시도지사협의회에서도 이 문제를 공론화할 생각이다. 국회를 움직여 문제가 된 조항(옥외광고물법 8조 8항)을 폐지하는 게 목표다. "
-국민의힘 부처가 왜 굳이 국민의힘 지자체를 제소했는지 의아하다.  
"(국민이 아닌) 국회 눈치를 보는 거라고 본다. "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