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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훌륭한 의사 주석중’을 떠나보내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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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실력·열정·인품 갖춘 심장 명의 사고로 별세

힘든 분야 기피 의료 현실이 애도 물결에 투영

내 눈엔 그가 예수이자 부처, 진짜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 분, ‘탁월하고 훌륭한’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재 중의 인재, 환자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긴 분. 지난 16일 불의의 사고로 별세한 고(故) 주석중 서울아산병원 혈관흉부외과 교수 앞에 놓인 말들이다. 동료·후배 의료인, 환자와 가족이 비통한 심정으로 그의 타계를 애도했다.

고인은 아산병원 인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밤샘 응급수술을 마치고 잠시 병원에서 눈을 붙인 뒤 입원 환자들을 돌아보고 집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수술은 그 전날 새벽에도 있었고, 그날 오후 회의와 연구 모임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는 30년간 환자의 심장을 고쳤다. 파열된 대동맥을 봉합하는 데 독보적이었다. 다른 의사가 포기한 환자의 생명을 무수히 구했다. 그가 없었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는 환자와 그들의 가족 증언이 쏟아졌다.

의술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고인은 365일 24시간 응급수술에 임할 수 있도록 병원 근처에서 살았다. 수술에 왼손을 더 잘 쓸 수 있게 하겠다며 왼손으로 젓가락을 쥐었다. 환자들에게 늘 밝은 표정으로 친절하게 말해 ‘주님’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피곤과 긴장 속에 살았지만 “환자 상태가 좋아지니 힘이 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생의 마지막 날도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에게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실력·열정·인품을 두루 갖춘 의사였다.

사고 소식과 더불어 주변인들이 애통한 마음으로 남긴 말들이 전해지자 그를 모르는 일반 시민도 존경의 뜻을 표했다. 각계에서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의사는 많은데 의사가 없어서 환자가 목숨을 잃는 일이 빈번해지고, 최우수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지만 생명과 직결된 분야의 의사 충원은 어려워진 현실이 애도 물결에도 투영됐다. 고인이 몸담았던 흉부외과는 은퇴 의사보다 신규 의사가 적은 대표적 분야다. 전공의 중도 이탈률(약 15%)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생명이 촌각에 달린 응급 상황과 장시간의 고난도 수술이 많아 젊은 의사들이 외면한다.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와 더불어 3대 기피 분야다.

어제 치러진 영결식에서 동료 의사가 “하늘에서는 응급 콜에 밤에 깨는 일 없이 편안하길 바란다”는 추도사를 읽었다. 고인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정작 그는 8년 전 병원 소식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될 때 힘들었던 모든 일을 잊는다. 비록 개인사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지금의 삶이 늘 고맙다. 불확실한 미래에 정답을 찾는 후배들에게 바란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의대생, 수련의, 의사 지망 청년이 고인의 이런 뜻을 새겨보기 바란다.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남기고 떠난 고인의 영면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