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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백병원 82년, 역사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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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중구에 있는 유일한 대학병원인 인제대 서울백병원이 경영난 속에 폐원 수순을 밟게 됐다.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으로 문을 연 지 82년 만이다.

20일 서울백병원에 따르면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이날 오후 3시 이사회를 열고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팀(TFT)’이 지난달 31일 결정한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20일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서 직원들이 폐원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이날 오후 이사회를 열어 ‘경영정상화 TF’가 이달 초 제안한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의결했다. [연합뉴스]

20일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서 직원들이 폐원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이날 오후 이사회를 열어 ‘경영정상화 TF’가 이달 초 제안한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의결했다. [연합뉴스]

서울백병원 측은 이사회 결정이 나온 직후 자료를 통해 “경영 정상화 노력에도 (누적) 적자 1745억원이 발생했다”라고 밝혔다. 2004년 73억원 손실 이후 줄곧 적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등 적자 만성화로 경영난을 겪었다는 것이다. 병원 측은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주변 거주 인구가 점차 줄었고 주변 대형병원 출현으로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경영 정상화에 나선 병원 측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다섯 달 동안 외부 전문기관 경영컨설팅을 받은 결과 의료 관련 사업 추진이 불가하다는 결론을 전달받았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7년 동안 운영 중인 경영정상화 TFT는 2017년 276개였던 병상 수를 매년 줄여 122개(지난해 기준)까지 축소하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인턴 수련 병원으로 전환해 전공의(레지던트)를 받지 않았다.

법인 측이 폐원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교육부의 규제 완화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외부 경영컨설팅에서 “의료기관 폐업 후 타 용도 전환이 불가피하다”라는 결론이 나와서다. 교육부가 지난해 6월 ‘사립대학 기본재산 관리 안내’ 지침을 개정했는데, 이에 따라 사립대학 재단이 보유한 토지·건물 등 유휴 재산을 수익용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명동 번화가 인근인 서울백병원 부지는 땅 가치가 2000억~3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서울시가 이날 서울백병원 부지를 도시계획시설(종합의료시설)로 결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부지 상업화에는 제동이 걸리게 됐다. 법인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의료부지로 땅이 묶이면 가치가 500억원 정도로 쪼그라들어 기대 가격의 4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병원 의료진·구성원과 서울시·중구는 폐원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 관계자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서울·부산·상계·일산 백병원지부는 폐원 반대 투쟁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환자들은 폐원 결정에 난감한 분위기다. 서울백병원을 18년 다녔다는 강모(82)씨는 “안 그래도 병원 내 안과가 없어져서 이미 다른 대학병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너무 불편하다”며 “노인 입장에선 가던 데만 가야 하고 혼자서 잘 다닐 수 있는 편한 병원인데 폐원 소식이 너무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법인 측은 상계·일산·부산·해운대 백병원과 같은 형제 병원으로 전보 조처 등을 통해 서울백병원 전체 구성원의 고용 유지를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일 기준 서울백병원 구성원 수는 386명(전임교원 28명, 비전임 교원 19명, 인턴 7명, 간호직 199명, 기타 일반직 133명)에 이른다. 기존 환자에 대해서는 진료 관련 안내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백병원 부지·건물의 운영과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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