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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아가씨…한국 영화미술 개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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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제14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 

제14회 홍진기 창조인상

제14회 홍진기 창조인상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열네 번째 영예를 안은 올해 수상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힘과 긍지를 세계에 떨치고 새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김명자 KAIST 이사장, 권오경 한양대 석좌교수, 유욱준 과학기술한림원장,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 김은미 서울대 교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건용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맡았다. 김명자 심사위원장은 “인류문명의 대전환기에서 돋보이는 창의성과 혁신성으로 우리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젊은 세대 리더를 발굴 상찬하면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유민(維民) 홍진기(1917~86)

한국 최초 민간 방송인 동양방송(TBC)을 설립하고 중앙일보를 창간해 한국의 대표 언론으로 키웠다.

류성희

류성희

류성희(55)라는 이름과 영화미술감독이라는 그의 직업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것은 그가 2016년 영화 ‘아가씨’의 강렬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칸 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벌칸상(기술상)을 수상했을 때였다.

그러나 류 감독은 그보다 훨씬 전인 2000대 초부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등 한국 영화사 대표작들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맡으며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K무비의 창조 과정에서 묵묵히 큰 부분을 맡아왔다.

류 감독은 명문으로 손꼽히는 미국영화연구소(AFI)를 졸업하고 한때 할리우드를 꿈꿨었다. 그러나 서부영화 세트를 만들다가 “타국 문화를 연구하고 답습하는 것밖에 안 되겠다 싶고 한국에서 미개척 분야를 개척하고 싶어서” 귀국했다.

그가 한국 영화판에 뛰어든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미술감독이란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세트 담당자, 소품 담당자, 의상 담당자 등등이 따로 있었을 뿐 그들을 지휘하며 영화의 미장센과 시각적 ‘톤 앤 매너(tone & manner)’ 즉 일관된 특색과 분위기를 디자인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기존 스태프의 반발이 거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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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류 감독은 차분하고도 강단 있게 영화미술을 지휘하며 점차 미술감독의 중요성을 각인시켰고 한국 영화의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봉 감독의 ‘괴물’(2006)과 ‘마더’(2009), 박 감독의 ‘박쥐’(2009)를 비롯해 전쟁영화 ‘고지전’(2011)과 ‘국제시장’(2014), ‘암살’(2015) 등 2000년 이후 한국 영화사의 주요 작품들이 류 감독의 손을 거쳤다.

최근 류 감독은 박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에서 영화의 핵심인 ‘파도처럼 서서히 밀려와 장악하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 찬사를 받으며 올해 초 ‘아시아 필름 어워즈’를 수상했다. 또한 OTT 시대에 발맞추어 TV 드라마로 영역을 넓혀 ‘작은 아씨들’(2022)의 프로덕션 디자인을 담당했는데, 이로써 K드라마의 시각적 완성도를 한층 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예술상을 수상했다.

과거에는 명화 등 감각적인 예술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동아시아 철학의 심오한 개념에서 더욱 영감을 받는다는 류 감독은 앞으로 장르면에서는 철학적인 SF, 매체 면에서는 OTT 드라마는 물론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방향으로 지평을 넓히고 싶다고 밝혔다. “그래서 영화 관련 상을 많이 받아보았지만, 창조인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리에 가슴이 뛰었다”고 류 감독은 말했다.

“더 창조적으로 지평을 넓히고 앞으로 더욱 할 일이 많다고 응원해주는 것 같은 상이라 진정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류성희 (1968년생)

▶홍익대 미대 학사, 미국영화연구소(AFI) 석사
▶‘살인의 추억’(2003) ‘국제시장’(2014) ‘암살’(2015) 등 미술감독
▶‘아가씨’로 2016년 칸 영화제 기술상 수상
▶‘헤어질 결심’으로 2022년 아시아 필름 어워즈 미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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