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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역사' 서울 백병원 결국 폐원한다…누적적자 1745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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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서울 중구에 유일한 대학병원인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이 경영난 속에 폐원하게 됐다. 1941년 ‘백인제외과병원’으로 문을 연 지 82년 만이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서 직원들이 폐원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채혜선 기자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백병원에서 직원들이 폐원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 채혜선 기자

‘82년 역사’ 서울백병원, 폐원 결정

20일 서울백병원에 따르면 학교법인 인제학원은 이날 오후 3시 이사회를 열고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팀(TFT)’이 지난달 31일 결정한 서울백병원 폐원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서울백병원 측은 이사회 결정이 나온 직후 입장문을 통해 “경영 정상화 노력에도 적자 1745억원이 발생했다”라고 밝혔다. 병원 측은 “2004년 73억원 손실 이후 줄곧 적자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등 적자 만성화로 경영난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서울백병원의 적자는 161억원에 이른다. 병원 측은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주변 거주 인구가 점차 줄었고, 주변 대형병원 출현으로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만성 적자의 배경을 설명했다. 병원 측은 같은 이유로 2004년 중앙대 필동병원, 2008년 이대 동대문병원, 2011년 중앙대 용산병원, 2021년 제일병원 등 주변 도심 병원이 잇따라 폐원·이전했다고 덧붙였다.

20일 서울백병원에 폐원 철회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사진 채혜선 기자

20일 서울백병원에 폐원 철회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사진 채혜선 기자

경영 정상화에 나선 병원 측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다섯 달 동안 외부전문기관 경영컨설팅을 받은 결과 의료 관련 사업 추진이 불가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한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7년 동안 운영 중인 경영정상화 TFT는 2017년 276개였던 병상 수를 매년 줄여 122개(지난해 기준)까지 축소하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인턴수련병원으로 전환해 전공의(레지던트)를 받지 않았다. 서울백병원 관계자는 “이 밖에 병동을 리모델링하고 매년 30억~50억원씩 투자하는 등 여러 노력이 있었으나 외부 환경 변화로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법인 측이 폐원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교육부의 규제 완화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외부 경영컨설팅에서 “의료기관 폐업 후 타 용도 전환이 불가피하다”라는 결론이 나와서다. 교육부가 지난해 6월 ‘사립대학 기본재산 관리 안내’ 지침을 개정했는데, 이에 따라 사립대학 재단이 보유한 토지·건물 등 유휴 재산을 수익용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명동 번화가 인근인 서울백병원 부지는 땅 가치가 2000억~3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서울시가 서울백병원 부지를 도시계획시설(종합의료시설)로 결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이날 밝히면서 부지 상업화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부지가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되면 주인이 바뀌더라도 병원과 같은 의료시설로만 사용할 수 있다. 법인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의료부지로 땅이 묶이면 가치가 500억원 정도로 쪼그라들어 기대 가격의 4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폐원 결정에 의료진·환자 당혹

20일 서울백병원 1층 로비에 이사회의 폐원 결정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는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 성명문이 붙어 있다. 사진 채혜선 기자

20일 서울백병원 1층 로비에 이사회의 폐원 결정에 대한 철회를 요구하는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 성명문이 붙어 있다. 사진 채혜선 기자

병원 의료진·구성원과 서울시는 폐원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서울백병원이 현재 중구 내 유일한 대학병원인 만큼 필수의료나 공공의료에 일정 역할을 하고 있다”(중구청 관계자)는 게 주된 이유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 관계자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협의회는 “지역사회의 유일한 대학병원인 서울백병원을 경제적인 논리만으로 폐원할 수는 없다”라는 입장이다. 보건의료노조 서울·부산·상계·일산 백병원지부는 폐원 반대 투쟁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중구는 지난 14일 서울백병원 측에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진료 기능 유지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내고 병원 운영을 계속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환자들은 갑작스러운 폐원 결정에 난감한 분위기다. 서울백병원을 18년 다녔다는 중구 주민 강모(82)씨는 “안 그래도 병원 내 안과가 없어져서 이미 다른 대학병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너무 불편하다”라며 “노인 입장에선 가던 데만 가야 하고 혼자서 잘 다닐 수 있는 편한 병원인데 폐원 소식이 너무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법인 측은 상계·일산·부산·해운대 백병원과 같은 형제 병원으로 전보 조처 등을 통해 서울백병원 전체 구성원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일 기준 서울백병원 구성원 수는 386명(전임교원 28명, 비전임 교원 19명, 인턴 7명, 간호직 199명, 기타 일반직 133명)에 이른다. 기존 환자에 대해서는 관련 안내장을 발송하고, 진료 관련 서류나 의무기록지에 대한 안내를 진행할 예정이다. 인제학원 측은 이날 입장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노조를 포함한 구성원들과 함께 향후 문제를 논의해나가겠다”라며 “별도 TFT를 구성해 전체 교직원들의 고용유지를 위한 전보 발령, 외래 및 입원환자 안내, 진료 관련 서류 발급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백병원 부지·건물의 운영과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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