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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이곳, 새벽에도 "쿠왕 쾅쾅"…억소리 '슈퍼카족'과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8일 오후 5시 경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를 지나는 페라리 F8 트리뷰토의 모습. 이날 30분 동안 도산대로 앞에 서 있으면서 10대가 넘는 슈퍼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혜연 기자.

지난 18일 오후 5시 경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를 지나는 페라리 F8 트리뷰토의 모습. 이날 30분 동안 도산대로 앞에 서 있으면서 10대가 넘는 슈퍼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신혜연 기자.

“쿠왕 쾅쾅쾅쾅쾅쾅”
 지난 18일 오후 5시쯤 찾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서는 귀가 떨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스포츠카의 성지’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30분도 안 돼 페라리 F8 트리뷰토, 람보르기니 우르스, 맥라렌720s 스파이더 등 10여대가 넘는 슈퍼카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강남구 도산대로의 스포츠카들. 이 차들을 촬영하기 위해 10대 카스포터들(오른쪽)이 인도 끄트머리에 서있다. 신혜연 기자.

강남구 도산대로의 스포츠카들. 이 차들을 촬영하기 위해 10대 카스포터들(오른쪽)이 인도 끄트머리에 서있다. 신혜연 기자.

도산대로는 강남구 신사동과 청담동을 잇는 왕복 10차선 도로다. 특히 학동사거리 인근 200m 정도의 구간은 스포츠카 마니아들이 자신의 차를 뽐내는 장소로 널리 알려졌다. 인근이 수입차 매장이 밀집한 전통적인 부촌인데다 잘 닦인 도로라는 점에서 전국 스포츠카 마니아들의 집결지가 됐다. 특히 24시간 운영하는 B카페가 슈퍼카 동호회 회원들의 아지트로 떠오르면서, 여름철 주말만 되면 일대 거리가 사실상 슈퍼카 진열장을 방불케 한다는 게 경찰 등 당국의 설명이다.

문제는 소음공해다. 18일 찾은 도산대로에도 약 5초간 굉음을 내며 스쳐지나는 슈퍼카 소음에 주변 행인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강남구청 홈페이지에는 “도산대로 이면도로에 거주중인 구민이다. 새벽 난폭운전 소음 구청에선 언제까지 방관만 할 건가” “새벽에 잠이 깰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과거 B카페 앞에 서 있던 페라리 F444, 488 GTB,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모습. [유튜브 채널 car spotters korea 캡처]

과거 B카페 앞에 서 있던 페라리 F444, 488 GTB,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모습. [유튜브 채널 car spotters korea 캡처]

 민원이 빗발치자 경찰은 2년 전부터 도산대로 슈퍼카 소음유발행위 단속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2021년 8월 한국교통안전공단, 강남구청과 함께 합동 단속에서 슈퍼카 12대를 불심검문해 불법개조 2건을 적발한 걸 시작으로, 최근까지도 합동 단속을 수시로 벌이고 있다.

경찰은 우선 슈퍼카 동호회원들이 도산대로에 모이는 것 자체를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슈퍼카 동호회 카페 등에 접속해 결집 일정을 파악해 단속을 벌이는 식이다. 스포츠카 차주들의 집합 장소이던 B 카페와 벤츠 매장 앞 인도에는 볼라드를 촘촘하게 설치해 인근 도로가 슈퍼카 진열장이 되는 걸 막았다.카 스포팅(car spotting, 특이한 차를 찾아다니는 취미)을 즐기는 이들이 몸을 던져 스포츠카를 촬영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인도에는 110m 길이의 높은 담장을 설치했다.

이상범 강남경찰서 교통안전계장이 도산대로에 지난해 설치된 인도 앞 펜스를 점검하고 있다. 도산대로 인근 인도를 펜스와 볼라드로 막아두었는데, 스포츠카들이 모이는 걸 막기 위한 용도다. 신혜연 기자.

이상범 강남경찰서 교통안전계장이 도산대로에 지난해 설치된 인도 앞 펜스를 점검하고 있다. 도산대로 인근 인도를 펜스와 볼라드로 막아두었는데, 스포츠카들이 모이는 걸 막기 위한 용도다. 신혜연 기자.

경찰 관계자는 “무엇보다도 지난 2년간 집중 단속을 통해 도산대로를 늘 경찰이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며 “슈퍼카 난폭운전이 100% 사라진 건 아니지만, 단체로 모여서 소음을 유발하는 행위는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슈퍼카 출몰이 잦은 여름이 다가온 만큼, 조만간 도산대로 슈퍼카 합동단속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차량을 불법 개조했을 경우에는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정식으로 형사 입건한 뒤 처벌하는 게 가능하다. 불법 개조 차량이 아닐 경우에는 범칙금 부과가 한계라 비교적 단속이 뜸했지만, 경찰청이 “불법 개조 여부와 관계 없이 소음유발 행위에 대해선 단속이 가능하다”는 지침을 내린 뒤엔 적극적으로 단속하는 분위기다.

경찰에 따르면 고급 스포츠카위 경우 개조 없이도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낼 수 있어 불법 개조 혐의 적용은 어렵다. 소음 유발로 범칙금 4만원을 물리는 게 전부다. 4만원이라는 범칙금이 슈퍼카 운전자들의 소음 행위를 막기에 역부족인 만큼 좀 더 엄격한 소음 단속 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실제 단속 현장에 가면 범칙금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해 왔지만 단속 외에도 슈퍼카의 엔진 소음 요건을 강화하거나 단속 규정을 늘리는 등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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