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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착했다 비둘기 신세되나…한강 점령한 가마우지 "유해동물 지정 검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10일 강원 경포호 내 월파정 주변 바위섬을 차지하고 있는 가마우지 무리의 모습.연합뉴스

지난 4월 10일 강원 경포호 내 월파정 주변 바위섬을 차지하고 있는 가마우지 무리의 모습.연합뉴스

“떼를 지어 다니면서 뱀장어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있어요. 그물 안까지 헤집고 들어오는 탓에 물고기랑 같이 잡혀 올라오기도 하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경기도 고양시 한강 하구에서 조업 중인 어부 심화식(68)씨는 민물가마우지 얘기가 나오자 불만을 쏟아냈다. 한강에서 급격하게 개체 수가 늘어난 민물가마우지가 어민들의 주 소득원인 뱀장어를 비롯한 물고기들을 잡아먹으면서 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오래전부터 정부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민물가마우지가 한강을 비롯한 전국의 강과 호수를 점령하면서 어민과 양식장 등에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민물가마우지를 유해동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민물가마우지의 텃새화로 발생하고 있는 양식장, 낚시터 등의 피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전문가 논의 등을 거쳐 유해야생동물 지정 추진 여부를 7월 중으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20일 밝혔다.

포획 등으로 개체 수 조절 가능해져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유해야생동물이란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동물로 환경부가 지정한다. 유해야생동물이 되면 피해지역 주민 등은 지자체로부터 허가를 받고 포획 등을 통해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다. 지금까지 참새와 까마귀 등이 농작물이나 과수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집비둘기는 분변이나 털 날림으로 문화재를 훼손하고 생활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다. 민물가마우지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면 비둘기나 멧돼지, 고라니처럼 인위적으로 개체 수를 줄이는 대상이 된다.

민물가마우지는 왜 한국에 눌러앉았나

강원도 춘천시 버드나무 군락지에서 민물가마우지 떼가 둥지를 친 모습. 전민규 기자

강원도 춘천시 버드나무 군락지에서 민물가마우지 떼가 둥지를 친 모습. 전민규 기자

민물가마우지는 원래 한국에서 겨울을 지내고 떠나는 철새였다. 그러다 2003년 경기도 김포시에서 100쌍이 번식하는 것이 처음 확인된 이후 춘천 의암호, 수원 서호 등에서 집단 번식지가 잇따라 발견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1월에 조사한 결과, 국내 민물가마우지 개체 수는 3만 2000여 마리였다.

특히, 온난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오르고 서식 환경이 좋아지면서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개체 수가 빠르게 늘었다. 2020년 삼육대 연구팀이 한강 지류인 중랑천의 조류 현황을 모니터링한 결과, 민물가마우지가 전체 조류의 26.8%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이 관찰됐다. 조류학자인 최창용 서울대 산림환경학과 교수는 “가마우지가 적응력이 빠른 종으로 한국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개체 수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저수지나 호수가 늘고 먹이 환경이 좋아지면서 민물가마우지의 개체 수도 계속 증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뛰어난 잠수 실력으로 물고기 사냥…양식장까지 습격

강원도 평창군의 한 양식장이 가마우지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망을 설치했다. 환경부 제공

강원도 평창군의 한 양식장이 가마우지 피해를 막기 위해 그물망을 설치했다. 환경부 제공

몸길이가 최대 1m에 달하는 민물가마우지는 뛰어난 잠수 실력을 이용해 먹이를 사냥한다. 한 번 잠수하면 51초까지 수중에 머물 수 있다. 또, 몸무게가 3kg 정도인 가마우지는 하루 평균 539g의 물고기를 먹을 정도로 먹성이 좋다 보니 어민들에게는 골칫거리다. 가마우지 떼가 양식장을 습격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나무가 민물가마우지의 배설물로 뒤덮이면서 죽는 백화 현상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민물가마우지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포획하는 방식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해외에서도 민물가마우지를 위해종으로 지정한 사례는 없다. 최 교수는 “유럽도 민물가마우지 개체 수 증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직접 사살하는 방식은 고려하지 않고 비살상 방법을 쓰고 있다”며 “유해야생동물 지정은 인간과 갈등 해소뿐 아니라 생태적인 부분까지 고려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단순히 포획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자연 전체적으로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를 전문가들과 면밀히 검토한 뒤에 유해야생동물 지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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