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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국정원 인사파동…용산 "김규현, 인사 손떼고 대기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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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지난주 후반 김규현 국정원장에게 “조직ㆍ인사에서 손을 떼고 기다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정보 소식통은 18일 중앙일보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지난주 김 원장에게 조직과 인사에 관여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며 “국정원은 이번 지시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 원장은 이달 초 단행한 국정원 국·처장 등 1급 간부 인사와 관련해 "김 원장의 측근 특정인이 주도한 편중 인사"라는 국정원 내·외부의 주장이 제기되자 윤 대통령을 직접 면담하고 인사의 배경 등을 소명했다. 이때만 해도 윤 대통령은 김 원장에게 직접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논란이 오히려 확산되면서 대통령실이 추가 지시를 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특히 19일부터 시작되는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 등을 고려해 대통령 공석 중 불필요한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지시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현재 국정원 '인사 파동'에 대한 진상조사를 진행 중이다.

그런데 국정원 안팎에선 이번 지시를 놓고 이해관계에 따라 제각각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전·현직 정보라인에선 대통령이 재가한 인사를 스스로 번복한 초유의 사태로 번진 이번 인사 파동의 배경을 정부 초반 국정원 내 주도권을 잡은 김 원장의 비서실장 출신 A씨를 중심으로 한 그룹과 이에 맞서는 그룹의 대결로 보는 시선이 강하다. 국정원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은 본지에 "A씨의 인사 전횡을 폭로한 세력은 주로 전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가 아직 살아남은 그룹"이라며 "이들은 A씨 문제를 부각해 궁극적으로 국정원장과 윤석열 정부를 흔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김 원장 후임 후보군의 이름도 설왕설래로 등장하고 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본지에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인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김 원장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제 한계에 왔다"며 "차기 원장은 윤 대통령에 대해 보다 충성도가 높은 사람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국가정보원을 찾아 202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받기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방명록에 ″자유 수호를 위한 헌신을 지지합니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사진 대통령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국가정보원을 찾아 202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받기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방명록에 ″자유 수호를 위한 헌신을 지지합니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사진 대통령실, 연합뉴스

반면 A씨와 가까운 진영에선 "대통령실의 추가 지시는 오히려 김 원장에 대한 신임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들과 소통하고 있는 정보 라인 관계자는 본지에 "집권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대통령실에서는 주요 부처가 정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강해진 상태"라며 "이러한 판단의 핵심에는 새 정부의 국정 기조에 반대하고 있는 부처 내 인사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귀국 이후 상황이 잘 정리될 거라고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일각에선 지난 16일 대학입시를 담당했던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을 경질한 것에 대해서도 "국정 기조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과 관련이 있다"라거나, "대통령실이 모든 부처의 인력 상황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안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취임 2년 차를 맞아 본격적으로 국정 동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국정원 등 극도로 민감한 조직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진 상황에 대해 대통령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다만 대통령실의 추가 지시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정원장 등의 인사에 관여하는 사람은 극도로 제한적"이라며 "대통령실 내에선 아직 후임 국정원장 인선과 관련한 공식적인 움직임은 파악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실 인사라인 관계자 역시 "후임 국정원장 인선과 관련한 사안이 공식적으로 올라온 것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지만, 고위 공직자 인선에 관여하는 인사기획관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최근 바쁘게 돌아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의 추이에 따라 '만약의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일부 여권에서도 보안이 생명인 정보기관에서 인사 관련 사안이 외부로 드러난 것 자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권력 다툼으로 해석될만한 국정원 내 인사 갈등은 이번은 처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정부 출범 직후 자신의 측근으로 알려진 조상준 전 국정원 기조실장을 임명했지만, 조 전 실장은 4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9월엔 국정원 1급 간부 20여명이 돌연 퇴직했고, 그해 12월에는 2ㆍ3급 보직자 100여명이 보직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도 흘러나오기도 했다.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회' 회장을 지낸 송봉선 한반도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은 "무엇보다 보안이 생명인 정보기관의 인사 문제가 외부에 드러났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며 "전문성을 토대로 국익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정권에 따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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